|
|
[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바꿔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미미는 이번 대회 한국 유도 '1호 메달'을 획득했다. 앞서 이틀간 치러진 남녀 4개 체급에서는 메달이 나오지 않았다. 또한, 허미미는 2016년 리우 대회 48㎏ 이하급 정보경 이후 8년 만에 한국 여자 유도에 은메달을 선사했다.
|
|
이날 심판은 허미미에게 연달아 위장 공격 판정을 내렸다. 위장 공격이란 실제 공격할 의도가 없으면서도 그런 것처럼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선수가 그 상황을 면피하고자 '방어를 위한 공격'을 했을 때 위장 공격 지도를 준다.
반칙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데구치는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그는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다소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데구치는 지도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에 "어려운 질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지도에 대해 할 말은 없다. 더 나은 유도를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바꿔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소신발언했다. 위장 공격에 대한 판정 기준의 모호성을 지적했다고 풀이할 수도 있는 말이다.
김미정 한국 여자유도 대표팀 감독도 경기 뒤 "보는 관점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허)미미가 절대 위장 공격을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미미가 주저앉고 안 일어난 것도 아니고 계속 일어나서 공격했는데…. 그렇다고 캐나다 선수가 딱히 공격했던 것도 아니었다. 약간 유럽이라는 게 (판정에) 조금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
|
2002년생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그는 유도 선수였던 아버지를 동경해 도복을 입었다. 중학교 때부터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7년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 여자 52㎏급에서 우승했다. 이듬해 일본 카뎃유도선수권대회 같은 체급에서 준우승했다. 허미미는 운동하면서도 명문대인 일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할 정도로 성실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지난 2021년이었다. 허미미가 잘 따르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유언은 "한국 국가대표로 선수 생활을 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허미미는 한국행을 택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같은 재일 교포 김지수를 따라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다. 입단 과정에서 허미미는 자신이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임을 알게 됐다. 허석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그는 올림픽을 향해 힘을 냈다. 꾸준한 운동으로 근력 보강, 경기 운영 능력도 국제 경험을 쌓아가며 보완해나갔다. 2022년 6월 국제대회 데뷔전인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올해는 더욱 매서웠다. 포르투갈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이어왔다. 진나 5월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건 1995년 여자 61㎏ 이하급 정성숙, 여자 66㎏ 이하급 조민선 이후 29년 만이었다.
허미미는 "(할머니께) 오늘까지 유도 열심히 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아쉽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결승전까지 갔다. 정말 행복했다. 메달을 딴 것도 너무 행복하다. (애국가 가사 외웠는데) 못 불러서 아쉽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꼭 부르고 싶다. (4년 뒤엔) 나이를 먹었을 테니까 체력이 더 좋을 것 같다. 다음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꼭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