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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민이 오네요!"
2006년생 지민양은 소신이 또렷한 '스마트' 10대다. 일간지에 장애인 정책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학교 내 장애학생 이동권 관련 국회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대안학교를 다니다 최근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수험생활 중 주2회 이상, 필라테스를 배우기 위해 집앞 4호선 혜화역에서 신용산역을 나홀로 오간다. '다람쥐 쳇바퀴' 수험생 일과의 '숨통'이다. 필라테스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다이어트도 대성공이다. 1년 새 10㎏나 감량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 척추측만증으로 인해 기울었던 어깨와 굽은 등이 곧게 펴졌다. 한겨울 칼바람에도 필라테스를 빼먹을 수 없는 이유다. 학교체육 시간 '깍두기'였다던 그녀가 난생 처음 자기주도적 운동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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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운동녀' 지민양의 통찰력은 날카로웠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운동이란 극단적인 두 가지인 것같아요. 선수로 패럴림픽에 나가든지, 아니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든지." 이어 그녀는 "내가 운동을 한다고 하면 '네가? 운동을?'이라며 놀라요. 초등학교 때 수영을 한다고 했을 때 '휠체어 탄 채로 수영해?'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어요. 어쩌면 당연하죠.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라며 웃었다. 고민 끝에 취재에 응한 이유는 분명했다. "장애인 운동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으니까요. 제가 운동하는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장애, 비장애인 모두 이런 정보를 더 많이 접해야 하니까요"라고 했다. "비장애인들은 운동할 곳을 알아볼 때 많은 정보 속에서 더 잘 맞는 걸 찾지만 장애인들은 없는 정보를 수소문해야 해요. 선택지가 넓어지는 게 제일 중요할 것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장애인에겐 휠체어만 들어갈 수 있으면 다 맛집'이라던 어느 장애인의 말이 떠올랐다. 장애인체육 맛집도 다르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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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필라테스처럼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배우는 '어울림' 민간 체육시설이 희망이다. 이 원장은 스물아홉에 '늦깎이' 필라테스 이력을 시작했다. '좋은 운동장'에서 장애인, 시니어 재활체육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디아필라테스를 오픈했다. 유튜브 채널 '굴러라구르' 운영자인 2001년생 김지우씨가 그녀의 첫 제자다. "지우가 필라테스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장애인 필라테스 장소 대관을 알아보다 8곳에서 거절 당했다. '내가 차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녀의 스튜디오는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장애인스포츠강좌이용권(이하 '장스강') 가맹기관에도 "당연히" 등록했다. 디아필라테스엔 지민양 외에도 장애인 회원이 15명, 뇌병변, 지체장애, 척수장애, 청각장애 등 다양한 장애유형 수강생들이 있고, '장스강' 이용자는 9명이다. '장스강' 예산은 올해 85억원에서 내년 160억원으로 늘었다. 매월 9만5000원씩 1년간, 만19~64세 전국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 사업에 지난 11월, 1만4000명의 장애인이 신청했다.
월 9만5000원의 지원금으로 '1대1 필라테스' 수업은 1.5회 정도 가능하다. 1대1 필라테스의 효능을 맛본 이들은 '장스강'을 예치금으로 소진하고, 수강을 이어간다. 이 원장은 '장스강'을 신청하지 않은 6명에 대해 "정보가 없어서 '장스강'을 신청 못하신 분도 있고, 신청에서 떨어진 분도 있고, 지민이처럼 학교 밖 청소년의 '사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신청에서 떨어졌다 해도 미리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내년부터 '장스강'을 신청하고도 2~3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경우 기회가 다음 신청자에게 넘어간다. 16세인 지민양의 경우 보다 촘촘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 중학교 때까지 교육부 '굳센카드' 지원을 받았지만 올해 대안학교 진학 후 학교 밖 청소년이 되면서 교육부 '바우처' 지원이 끊겼다. 문체부의 '장스강'은 만 19~64세 대상이다.
이 원장은 "용산구에서 '장스강' 가맹기관이 저희 포함 단 2곳뿐이라고 들었다"면서 더 많은 민간체육 시설들의 참여를 희망했다. "필라테스는 장비가 비장애-장애인 똑같다. 우리같은 통합센터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전문강사 양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내년 1월 결혼을 앞둔 그녀는 "장애인 회원들이 어렵게 운동할 곳을 찾았는데 내가 그만둘까봐 걱정하더라. 그걸 보며 마음이 급해졌다. 장애, 비장애인을 모두 가르칠 수 있는 강사가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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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장애인들과 필라테스를 할 때 늘 가슴에 새기는 말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 막 대해주셔도 돼요. 저희 장애인 약하지 않아요. 할 수 있어요.' 지우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그래서 모든 동작도, 휠체어 옮겨 타는 것도 스스로 하도록 한다. 장애인은 약하거나 도와줘야 할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체육을 '블루오션'이라 말하는 이 원장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많은 것에서 포기가 익숙한 친구들이다. 이들에게 체육이 포기가 아니라 선택하는 삶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