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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스피드가 돌아왔어요. 빙판 위를 휙휙 달리는 기분이 너무 좋아요!"
연두 작가는 2020년 5월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은 후 힘겨운 재활기간 중 병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처럼 중도장애를 갖게 된 이들에게 병원 경험을 알려주려 했다. "그림을 우연히 본 치료사 선생님이 재미있다고 하셔서 SNS에 올렸는데 예기치 못한 큰 관심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 고연수씨와 똑닮은 그녀의 분신, 세 갈래 앞머리에 웃는 얼굴, 파릇파릇 연두빛 옷을 입은 '연두'의 따뜻한 일기는 장애, 비장애인 독자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책을 출간하게 됐고, 대한장애인체육회 장애인식개선 캠페인 '위더 피프틴(WE the15)' 홍보대사로도 임명됐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여느 20대 여성들처럼 다이어트를 위해 수영, 스피닝, 줌바 댄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던 그녀에게 다친 후 운동은 놓쳐선 안될 일상이 됐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굳고 강직이 심해지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다보니 운좋게 회복이 많이 돼서 클러치(목발)를 짚고 걷거나 설 수도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 여름부턴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운동을 하긴 했지만 선수의 길을 생각한 건 당연히 아니었다. "한 감독님의 권유로 파라아이스하키를 체험하게 됐는데 이렇게 선수의 길로 흘러갈 줄은 나도 몰랐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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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초긍정 에너지' 연두 작가는 사실 '공학도' '여행사 직원'이라는 반전 이력을 지녔다. "경희대 식물환경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여행사에 취업했는데 코로나로 망하고 그러다 다치고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다 책도 내고 웹툰페어에도 나가고, 어쩌다 파라아이스하키까지 도전하게 됐다. 인생은 정말이지 한치 앞을 모르겠다"며 웃었다. "다치기 전에도 힘든 일은 있었다. 다친 후 몸은 힘들고 불편하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활동에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연두 작가는 "지금은 파라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퐁당 빠진 상태"라면서 "썰매 타기, 손 짚고 턴하기, 퍽 드리블 하기까지 배웠다. 아직 완전 능숙하진 않지만 너무 재미있고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며 눈을 반짝였다. 주변 여성 장애인들의 도전도 독려했다. "밖에서 볼 때 격해보여서 다칠까봐 걱정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걸 잊을 만큼 너무 재미있다. 무엇보다 장애가 생긴 후 느끼지 못했던 스피드감을 다시 느끼게 돼 너무 좋고, 하나의 기술을 배울 때마다 성취감도 크다"고 설명했다. "선수로 활동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며 활짝 웃었다.
평창패럴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한 '레전드' 한민수 감독은 한국 최초의 여자 파라아이스하키팀 출범에 진심이다. "인천팀의 주명희 선수, 연두 작가를 시작으로 여성팀을 활성화하고 싶다. 베이징패럴림픽 때 봤듯이 노르웨이, 일본, 중국엔 남성팀에 여성 선수가 있다"면서 "평창패럴림픽 이후 제2실업팀 창단이 우리 아이스하키계의 숙원인데, 기왕이면 남녀 혼성 실업팀으로 남녀가 함께 훈련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랐다. 2000년 대한민국 첫 파라아이스하키팀 창단 멤버의 소명의식은 흔들림이 없다. 세계 무대를 향한, 원대한 계획을 품었다. "월드파라아이스하키 협회는 여성 종목 확대를 적극 추진중이다. 지난해 전세계 여성 파라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월드팀'으로 초청해 대회도 개최했다. 기존 미국, 캐나다에 이어 영국도 여성팀을 만들었다. 우리도 빨리 팀을 구성해 준비해야 한다. 패럴림픽 메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강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