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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이상화"자신을 믿어요. 기적이 일어날 거예요"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2-23 05:20


사진=장미란재단



지난 18일 밤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레이스, 감동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자신의 4번째 올림픽, 평창올림픽에서 '빙속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지난 두 시즌간 '라이벌'로만 알려진, 오랜 절친 고다이라 나오가 눈물을 닦아주며 포옹하는 모습은 이번 올림픽 최고의 장면으로 꼽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올림픽 3연패를 기대했지만 이날 은메달을 딴 이상화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아쉬움이 아니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녀를 향해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네 번의 올림픽동안 이상화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안겨준 기쁨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갈채였다. 밴쿠버, 소치올림픽 연속 금메달에 이어 평창에서 빛나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전에는 2등을 따면 죄인이 된 기분이었거든요. 이번 올림픽은 달랐어요.은메달을 따고 나서 너무 놀랐어요. 저는 고개를 못들겠는데, 국민들께서 더 격려를 해주시고, 환호를 해주셔서…." 혼신의 레이스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가 생긋 웃는다.

21일 오후 평창올림픽 결제기술 공식 파트너 Visa의 도움으로 강릉선수촌 앞 비자코리아 사무실에서 '빙속여제' 이상화를 만났다. 경기가 끝난 지 사흘이 지났건만 이상화는 쉴 틈이 없다. 시상식, 인터뷰, 올림픽 현장 행사에 참여하며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7개의 알람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 후 기자회견에선 이상화의 알람 7개가 화제가 됐다.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지난 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똑딱똑딱 지켜왔던 7개의 알람은 온통 '운동, 식사, 낮잠'의 무한반복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7개의 알람을 끄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불과 이틀도 안돼 다시 알람을 켰다. "물론 쉬고 싶은 마음은 크다. 근데 몸이 시간을 기억하고 있더라. 눈 뜨는 시간이 알람시간과 같더라"며 웃는다. "알람 끄고 처음 일어났을 때 적응이 안됐다. 평창을 위해 4년을 달려왔는데 이게 순식간에 딱 끝나버렸다. 다시 링크장에 나가야할 것같고, 허전하고…." 강릉선수촌 19층 방에서 1층까지 걸어내려가며 운동을 대신했다. "왜냐하면 하루종일 운동을 못했으니까, 그냥 몸에 배있는 것 같다." 하루만 뛰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리는 그녀는 천생 스케이터다.

4년동안 알람을 끄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물었다. "평창을 위해서 해야만 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다. 3연패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나도 꼭 하고 싶었다. 그 목표가 굉장히 컸다.그래서 계속 끊임없이 달려온 것 같다."



#파랑스케이트날 #빨간모자

이상화는 이날 500m 레이스에서 첫 100m를 10초20에 주파했다. 고다이라(10초26)보다 빨랐다. 지난해 부상 이후 최고 기록으로 스스로도 제어 안될 만큼 무서운 스피드로 내달렸다. 마지막 3코너에서 실수가 아쉬웠지만 평창 현장에서 보여준 그녀의 스타트 기록은 놀라웠다. "그렇게하기까지 1년반이 걸렸다"며 웃었다.


지독한 부상후 맞은 평창올림픽 시즌, 지속적인 성장의 이유는 과감한 변화였다. 올림픽 시즌, 대부분의 선수는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화는 수술대에 오르는 큰 결정을 내렸다. "스케이트 탈 때 종아리가 아프고 발이 저려 움직일 수 없었다. 안돼도 연습을 자꾸 하다보니 몸이 망가졌다. 결국 하지정맥류 수술을 하게 됐다"고 1년 전을 떠올렸다. "사실 올림픽 1년 전에 전신마취 수술은 잘 안한다. 그런데 수술 후 확실히 좋아졌다. 만약 그때 수술하지 않았다면 평창에서 입상을 못했을 것같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캘거리월드컵을 앞두고는 10년동안 타던 블레이드(스케이트 날)도 바꿨다. 황금색 날(캐나다 메이플사)에서 파란색 날(네덜란드 바이킹사)로 갈아끼웠다. 이상화는 "이런 부분에 굉장히 민감했던 내가 평창을 앞두고 오히려 유해졌다"고 털어놨다.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원래는 그렇게 올림픽 전에 바꾸지 않는다. 그런데 올림픽을 불과 세 달 앞두고 확 바꾼 거다. 이런 것에 진짜 예민한 스타일인데, '아, 내가 이렇게까지 변했나' 싶었다. 새로운 걸 추구하고 싶었고, 그냥 즐기고 싶었다. 이 스케이트 날도 한번 타보고 싶었다. '한번 해보자' 했다. 굉장히 재밌었다."

이상화는 강릉오벌에서 예의 파란모자 대신 빨간모자, 빨간장갑 차림으로 스케이팅했다. 손끝의 빨강 네일도 시선을 끌었다. 치열했던 지난 3주간 스케이트화를 묶느라 벗겨져 몇개 안남은 빨강손톱을 들여보였다. "징크스는 없다. 다만 파란색, 빨간색을 되게 좋아한다. 소치 때부터 쓰던 파란 모자는 너무 질렸고, 오래 쓴 것같아서 그냥 빨간색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다. 빨간색의 뜻이 '열정'이라기에 그런 '열정'을 갖고 열심히 임하고 싶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 경기가 18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열렸다. 고다이라가 1위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는 2위로 골인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가 국기를 들고 링크를 돌고 있다.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2.18/
#오빠 #은메달 #베이징올림픽

이상화는 소치올림픽에 이어 이번 은메달도 오빠 상준씨(32)에게 선물했다. 이상화는 스케이트를 먼저 신은 오빠의 영향으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메달을 오빠에게 주면, 오빠도 메달리스트가 되니까"라고 했다. "오빠한테 이것도 오빠 것이라고 했더니 오빠가 장난으로 베이징올림픽까지 한번 더 하라고 하더라. 그럼 더 잘 챙겨주겠다면서." 가장 궁금해하던 부분이 나왔다. 이상화는 말을 이어갔다. "오빠, 제발! 올림픽 끝난 지 이틀밖에 안지났어. 제발, 그런 얘기는 그만해 하고 넘겼다"라며 하하 웃는다.

진지하게 베이징올림픽의 가능성을 다시 물었다. "우리 오빠는 정말 장난이고(웃음) 원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지금도 4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베이징은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성격상 먼 미래를 생각지 않는다. 당장 내일, 낼 모레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아직도 먼 이야기인 것 같다."

#100점짜리자신감

휘경여고에 재학중이던 열여섯 살에 첫 태극마크를 단 소녀는 2018년 네 번의 올림픽을 경험한 베테랑 국가대표가 됐다. 이상화의 20대는 오로지 스케이팅과 올림픽 뿐이었다. 화려하지만 평범한 삶이 아니었기에 후회도 남을 법 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도 스케이트를 타겠냐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그래도 (스케이트를) 탈 것"이라고 단언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스케이트였고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두 번이나 이룬 지금, 스케이트는 내게 축복"이라고 했다.

이상화는 평소 자신을 '100점짜리 선수'라고 말해왔다. 은메달 후 기자회견에서도 "나는 100점"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날도 "나는 100점이다. 나에게 상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반박불가'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상화는 "그 자신감이 내 몸을 만든다. 그리고 그 몸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기 때문에, 일곱 살때 스케이트를 처음 신은 이후 '자신감은 기본'이라고 생각해왔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네 번의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지난한 선수생활을 버티게한 원동력 역시 '나는 나'라는 자신감이다. "돌아보면 나도 자신감이 떨어진 적이 많았다. 약간 대인기피증도 온 적도 있다. 어쩌다 순위에 못 들 때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한때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한단계 더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다.

팍팍한 세상속에 넘어지고 포기하고 좌절하는 청춘, 20대 후배들을 향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빙속여제' 이상화가 즉답했다. "주저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향한 믿음을 가지세요. 자신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요."


강릉=위사은 장미란재단-Visa평창대학생기자단 기자(한동대), 정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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