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청운,靑소년運동]"어른들은 몰라요" '떡잎'들이 외치는 '유스핏 협동의 기쁨'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7-12-17 18:33


씨앗이 싹 트며 처음 세상에 내보이는 잎을 우리는 '떡잎'이라 부른다. 어린아이들을 떡잎에 비유하는 이유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좋은 인재는 아이 때부터 확 눈에 띈다는 뜻인데, 이는 어른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표현인 게 분명하다. 떡잎의 앞날을 지나치게 단정짓는 느낌. 인생엔 수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운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존재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외성'을 아이들은 간직하고 있다.



14일 경기 남양주 금곡초등학교에 갔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대한체육회의 '유스핏(Youth-FIT)'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유스핏'은 대한체육회가 마련한 청소년 맞춤형 건강체력 프로그램으로, 전국 17개 시도 140개교에서 신체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도전정신과 성취감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 운동의 빈도, 강도, 형태, 시간에 즐거움까지 고려해 총 6가지 피트니스 코스로 구성됐다.

체육관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이때 한 아이가 어디론가 헐레벌떡 뛰어간다. 곁을 스쳐가는 틈에 물었다. "체육관이 어디에요?" 아이가 손짓과 함께 답했다. "쩌~어기요!" 헐떡임에서 느껴지는 조급함. 그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하나 더 물었다. "운동장에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 언제 눈 왔어요?" 황급히 발걸음을 떼며 하는 말. "아! 몰라요~!" 순식간에 발소리가 멀어진다. 바쁘긴 바빴던 모양. 수북히 쌓인 눈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체육관으로 향하려던 순간. 210㎜ 쯤 될 법한 신발 소리가 다시 가까워진다. "지난주에 내린 건데 정확히 무슨 요일인진 기억 안나요!" 내심 걸렸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고맙고 예쁘다. 아이는 다시 멀어져 갔다. 이렇듯 알다가도 모를 존재, 그럼에도 참 예쁜 게 아이들이다.


금곡초의 '유스핏'도 그랬다. 섬세하면서도 복잡한 아이들의 마음이 반영됐다. 당초 5~6학년 중 학생건강체력평가제(PAPS)에서 하위 등급인 4~5급 학생, 체력우려 학생 및 비만 아동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 했지만, '어른들의 발상'과 현장은 사뭇 달랐다. 아이들은 자신의 신체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징벌적 과제'로 인식했다. 금곡초는 신속히 신청제로 전환, 20명의 아이들을 자발적으로 모집했다. 적절한 판단이었다. 금곡초는 이렇게 9월부터 매주 2회씩 1시간 20분 간 즐거운 '유스핏'을 진행중이다.


이날은 6개 과정 중 '스퀘어 코스'를 소화했다. 커다란 사각형 모양으로 장애물 및 임무 수행 지점을 배치, 학생들이 이를 단계별로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 시작 전 몸풀기에도 웃음꽃 만발이다. 나이 지긋한 전문강사의 '아재개그'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에이 재미없어요!"라면서도 솟구치는 입꼬리는 막지 못한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의 마음, 겉과 속도 때론 다른 모양이다.

보고 있자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엔 별 맥락이 없다. 무엇이 핵심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어른들은 당최 알 수가 없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서로 부둥켜 안고 쉴새없이 웃고 뒹군다. 이 모습에 담당 교사, 전문 강사 등 어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아이들의 순수함. 순백이란 표현도 탁하다. 그 투명함엔 한계가 없다.
20명의 아이들은 4개 조로 나뉘어 각자 다른 지점에서 출발, 자신들에게 닥친 장애물과 임무를 극복, 수행해야 한다. 이제 본격 시작. 나름 진지하게 하려 해보지만 또 웃음보가 터진다. 대충 임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자세히 보면 이 유스핏, 강도가 상당하다. 사다리 달리기, 스케이트 타기, 플라스틱 막대 균형잡기, 공 드리블, 나비자세에 사방 스텝까지. 아이들의 사지는 쉴 틈이 없다.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웃음소리의 형태도 점차 달라진다. 끝이 길게 늘어지는, '곡소리'에 가까운 그런 웃음. 어쨌든 아이들은 웃고 있다. 친구들과 몸 맞대고 함께 숨 몰아쉬는 즐거움일까. 단지 공부를 안 하니 좋은 것일까. 어른의 머리로는 떡잎들의 웃음꽃, 그 뿌리를 알 수 없다.


류미경 대한체육회 학교체육부장은 "입시위주 학교 교육으로 인한 학생들의 건강 체력 저하, 청소년 비만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한체육회는 올해 '청소년 맞춤형 건강체력 프로그램(Youth-FIT)'을 개발해 일선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 활동 습관 기르기, 건강 상태 셀프 체크 등 학생들을 위한 피트니스 중심의 건강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다. 대한체육회는 향후 유스핏 모바일 어플도 개발해 지도자와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더욱 유용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스핏'을 마친 뒤 아이들의 말이 또 놀랍다. 5학년 김서진 군은 "운동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다. 그런데 친구들과 '협동'한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같은 학년 박예원 양도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 안 하는 친구들에게도 다음에 같이 하자고 한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 '협동'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번에도 '어른적 사고'의 경계를 넘었다. 유스핏의 매력으로 '운동 효과'보다는 '협동의 기쁨'을 들었다.



프로그램을 지켜본 바 유스핏 코스는 조별 활동이긴 하나, 세부 과정엔 개인별 과업이 더 많았다. '같이 하긴 해도 결국 개인 활동의 집합 아니었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어른의 관점이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선 함께 같은 방향으로 뛰면 그게 협동이었다. 다른 조건은 필요없다. 따로 하든, 같이 하든 그건 중요치 않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활동을 함께 한다는 것. 그것 하나면 협동의 조건으로 족했다. '떡잎'이 협동일 마시면, 피는 게 웃음꽃이었다.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개념, 협동. 경쟁만이 떡잎의 양분인 양 군림하는 지금, '유스핏'은 아이들이 마음껏 협동을 마실 수 있는 샘터였다. 그러자 다시금 드는 생각. '함께 달리는 행복을 아는 아이들이 더 많아진다면, 저 운동장에 쌓인 눈들도 금세 녹지 않을까.'
남양주=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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