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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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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좋을 리 만무했다. 환호보단 한숨 쉬는 순간이 많았다. 앞서기보단 뒤처지는 게 익숙한 삶. 학업 성적도 동시에 곤두박질쳤다. '사춘기 소녀' 김보름의 머리는 복잡했다. "선수로서도 학생으로서도 모두 바닥을 쳤다.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싶었다." 그렇게 빙판과 작별을 떠올렸다.
한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내가 운동을 관두면 뭘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해온 건 운동뿐인데…."
주변의 반대와 부모님의 만류에도 다시 신은 스케이트화. 얼음판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쇼트트랙과 개념이 완전히 다르고 쓰는 근육과 전술도 달랐다. 늦게 시작하다보니 처음에 정말 힘들었다. '아, 이것도 안되는 건가'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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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투정은 사치였다.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땐 놀고 싶을 때 놀고 그랬다.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을 하면서 내 생활,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버렸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1년 태극마크를 달고 알마티동계아시안게임에 나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완만하던 김보름의 빙상 그래프, 커다란 변곡점을 맞이했다. 2014년 매스스타트 종목이 정식 도입됐다. 여러 선수가 동시에 출발해 400m 트랙을 16바퀴를 가장 빨리 돌아야 하는 종목이다. 인-아웃 코스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는 점에서 쇼트트랙과 흡사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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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물을 만났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메달을 손에 넣었다.
김보름은 12일(한국시각)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열린 2016~2017시즌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파이널 매스스타트에서 8분45초75로 2위를 차지했다. 랭킹 포인트 120점을 더해 총 460점을 기록, 종합 1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선 김보름, 이제 그녀의 눈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매스스타트는 평창올림픽을 통해 올림픽 첫 선을 보인다. 김보름은 "매스스타트를 만난 건 행운이다. 이 시기, 이 나이에 도입이 됐다. 그리고 마침 평창올림픽에 포함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당연한 메달은 없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다른 선수들도 구슬땀을 흘린다. 빙판에선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완벽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지막 그의 한마디가 짙은 잔향을 남겼다. "최근 여러 이유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시잖아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으면 때는 분명 오는 것 같아요. 소중한 걸 놓으시려는 분들께 희망을 드리기 위해서라도 저는 최선을 다 할 겁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