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캐나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작은 도시에서 대학을 나왔다. 끝없는 노력, 끝없는 열정이 있다면 여러분도 분명 해낼 수 있다."
지난달 31일, 경기대 수원 캠퍼스, 유승민 IOC위원이 개최한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스포츠외교 포럼에 패널로 참석한 박낸시 전 평창올림픽조직위 대변인(44)의 이야기는 힘이 있었다. 박 전 대변인은 이날 포럼을 앞두고 IOC로부터 아시아 지역 커뮤니케이션 담당 대외협력 책임자 선임 통보를 받았다. 강당을 가득 메운 경기대, 경희대 학생들과 스포츠 외교관을 꿈꾸는 청년들이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어떻게 하면 IOC에 입사할 수 있어요?" "면접 때 어떤 부분을 보나요?"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포럼 후 그녀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학생들이 줄을 늘어섰다.
1997년 대한항공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스물셋의 앳된 숙녀가 21년만에 '세계 스포츠의 중심' IOC에 입성했다. 한국계 직원이나 인턴의 사례는 있지만, 한국계가 고위직인 아시아 책임자로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포럼에서 이희범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은 "IOC에서 박낸시 대변인을 달라고 졸랐다"고 귀띔했다. 평창 현장에서 언제나 웃는 낯으로 진심과 열정을 다해 일하는 그녀의 능력을 IOC가 알아봤다.
항공전문가에서 스포츠전문가로
박 전 대변인은 캐나다 중부의 작은 도시 리자이나에서 태어났다. 캐나다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만능 스포츠맨' 아버지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한국서 이민 온 대다수 부모들이 아이들의 책상머리 공부에 열을 올릴 때 그녀의 부모님은 '운동습관'을 가르쳤다. "한국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풀 때 나는 오빠, 남동생과 운동을 했다"고 했다.학교에선 컬링, 크로스컨트리, 아이스하키를 배웠고, 고등학교 때까지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스포츠는 그녀에게 일상이다. 요즘도 양천구 배구 동호회 두 팀에서 활약하고, 프로배구 대한항공 점보스에 열광하는 '체육인'이다. 마흔 살 되던 해 만든 40개의 버킷리스트 중 '배구 심판 되기' 목표도 이뤘다.
캐나다 태생의 그녀는 대학생 때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왔다. "기역니은(ㄱ,ㄴ)도 잘 몰랐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서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1997년, 졸업 후 첫 직장은 주한 캐나다대사관이었다. 어느날 대사관에 들어온 대한항공 구인 공고를 보고 직접 지원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그녀의 열정과 글로벌 역량을 아꼈다. "항공 전문가가 되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며 유학을 권했다. 서른 살 되던 2004년 몬트리올 콩코르디아항공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항공 전문가를 꿈꾸던 그녀가 스포츠 경력을 시작하게 된 건 '평창올림픽' 덕분이다. 2009년 조 회장이 평창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은 후 그녀는 유치위 사무국에서 일하게 됐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 세계를 누볐다. 2014년 조 회장이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이 되면서부터는 평창 파견 근무를 시작했다. 스포츠와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는 열과 성을 다해 신명나게 일했다.
2016년 조 회장이 조직위원장직을 내려놓으면서 박 대변인도 짐을 싸야 했다. IOC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능력자'의 빈자리는 컸다. 조직위에서 도움을 청해왔다. 조 회장은 그녀를 불러 직접 의사를 물었다. 그녀는 평창의 성공을 누구보다 염원했다. 어쩌면 일생에 한번 뿐일 도전을 택했다. 조 회장 역시 그녀의 뜻을 존중했고, 국가의 대사를 우선했다. "우리 회사 출신으로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달라." 그뿐이었다. 다시 돌아간 평창에서 내 일 네 일 없이 최선을 다해 즐겁게 일하는 그녀의 존재감은 빛났다. 전세계에 '안전 올림픽'을 알리기 원하는 강원지방경찰청에 BBC, NBC, 알자지라 등 내로라하는 외신을 직접 연결했다. 지난달 25일 경찰의 날, 경찰청은 박낸시 대변인에게 감사패로 마음을 전했다.
열정과 태도, IOC가 그녀를 원한 이유
평창올림픽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대한항공에 복귀한 그녀를 이번엔 IOC가 원했다. "어느날 아침, 메일을 열어보니 IOC의 메시지가 있더라"고 했다. 2018년 평창, 2020년 도쿄, 2022년 베이징… 아시아에서 3연속 올림픽이 이어지는 중요한 시점, 아시아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할 대외협력 책임자 자리를 제안했다. 학교에 재미를 붙인 딸을 위해 스위스 로잔행을 망설이자, IOC는 파격적인 한국 근무 조건을 제안했다.
'IOC가 왜 당신을 택했을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평창에서 외신 대변인을 할 때 IOC와 파트너십이 잘 구축됐다. 북측 관련 등 이슈도 많았다. 로잔과 시차없이, 밤낮없이 일했다. 국제연맹,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스폰서 사이에서 위기관리, 이슈관리, 관계를 잘 풀어내는 점을 좋게 본 것같다. 주어진 일 외에도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찾아서 했다. 스포츠도 알고, 무엇보다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인정해준 것같다."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 2032년 남북공동올림픽을 추진하는 시점, IOC 현황에 정통한 한국계 여성의 고위직 발탁은 반가운 소식이다. 스포츠 외교에 관심이 많은 조 회장 역시 21년을 헌신한 열혈 직원의 IOC행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박 전 대변인은 "한국말도 잘 못하던 스물셋에 입사해 항공의 길을 생각하던 내게 스포츠의 길이 열릴 줄은 몰랐다. 저를 뽑아주고, 키워준 회사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고개 숙였다. 그녀는 매사 긍정적이다. "세상에 사소한 일은 없다. 차 심부름을 해야할 때도 있었다. 기왕 해야할 일, 기꺼이 했다. 유쾌한 농담을 던지면 분위기가 좋아졌다. 간혹 복사를 시키는 분도 있었다. 중요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보게 되니 그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박 전 대변인은 11월 초, 21년 정든 직장, 대한항공에 사직서를 제출한 후 스위스 로잔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포츠외교관을 꿈꾸는 후배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똑같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다. 분명 돋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엄청난 노력, 엄청난 열정, 엄청난 헌신(a lot of hard work, a lot of passion, a lot of commitment)이다. 수많은 직원들이 있지만 모두가 100%를 쏟지는 않는다. '어떻게 할까, 어쩌면 좋을까' 걱정하지 말고, 모든 기회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면 좋겠다. 캐나다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나도 해냈다. 누구든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은 여러분 하기에 달렸다.(Anybody can be successful. It's really up to you.)"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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