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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人터뷰]'왼손검지 20년 굳은살'남현희의 손 "칼갈았어요"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8-20 05:30




"선수촌 방에서 칼을 갈았어요."

'땅콩검객' 남현희(37·성남시청)가 생애 5번째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칼을 간' 이야기를 전했다. '땅콩검객'이라는 별명 그대로 그녀는 1m53, 키가 작다. 키가 작다보니 손과 발도 작다. 펜싱화 사이즈는 215㎜, 기존 시판 제품 중엔 맞는 것이 없다. 펜싱화는 선수생활 20년 내내 가장 큰 고민이었다. 230㎜에 양말을 3겹 이상 신어야 신발이 벗겨지지 않을 정도다.

손도 작고, 손가락도 가느다란 탓에 펜싱 검 손잡이도 기존 제품들은 맞질 않는다. 엄지와 검지로 감싼 검이 빠지지 않게, 둘째 손가락으로 힘껏 지지하다 보니 왼손 검지엔 지문이 사라졌다. 대신 두터운 굳은살이 배겼다. 2002년 부산 대회부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지난 16년간 5번째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백전노장' 남현희, 2000년 베이징올림픽 은메달 때를 제외하고 단 한번도 마음에 드는 장비를 갖추고 피스트에 오른 적이 없다. 헐렁거리는 신발, 헐렁거리는 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시로 개조해가며 한국 여자 펜싱의 역사를 써왔다.



가까이서 지켜본 남현희는 펜싱을 정말 사랑하는 선수다. 자나깨나 오로지 펜싱 생각뿐이다. 그 포인트에서 내가 왜 졌을까를 몇 번이나 복기한다. 다시 붙었을 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치밀하게 연구한다.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20년 가까이 세계 정상을 놓치지 않은 건 펜싱을 대하는 집요하고 치열한 자세 덕분이다. 장비에 있어서도 하릴없는 불평보다는 스스로 골똘히 연구해 길을 찾아낸다. "손가락이 닿는 부분은 예전부터 줄로 갈았었어요. 끝부분은 새끼손가락이 닿을 수 있게 테이프도 두껍게 감았고요. 아시아선수권에 가기 전에 문득 손가락이 닿는 부분 말고 손잡이 몸통 부분을 좀 갈면 손에 더 착 감길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이 꽂히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몇 시간이고 방에 틀어박혀 줄로 펜싱검 손잡이를 갈고 또 갈았다. 잡는 부분이 얇아지자, 그립이 한결 편해졌다. 무릎 수술 한달도 안돼 출전한 6월 태국아시아선수권에서 남현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가볍게 뛰었다.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칼을 간 효과'를 제대로 봤다. "펜싱 검이 손에 감기면서 경기할 때 손이 한결 편해졌다"며 미소 지었다.

이번 아시안게임 '여자주장' 남현희는 20일 절친이자 라이벌인 '디펜딩챔피언' 전희숙(서울시청)과 함께 생애 5번째 아시안게임에 나선다. 한국 여자 플뢰레의 전성기를 이끈 남현희, 전희숙 '투톱'이 함께할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다. "누가 됐든 여자 플뢰레에서 반드시 금메달 2개를 따내자"고 결의했다. 남현희 개인에게도 많은 기록이 걸려 있다. 한국선수 역대 최다 금메달, 자신의 최다 금메달 기록에 도전한다. 2002년 부산대회에서 여자플뢰레 단체전 첫 금메달을 딴 후 2006년 도하대회에서 개인전-단체전 2관왕,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도 2관왕에 올랐다. 2014년 인천대회에선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체전 4연패와 함께 6개의 금메달을 따낸 그녀는 수영스타 박태환과 나란히 하계아시안게임 최다 메달 보유자다. 자카르타에서 2관왕에 오를 경우 8개의 금메달로, '빙속스타' 이승훈의 동계아시안게임 최다메달(7개) 기록도 뛰어넘는다. 국제대회 통산 100개의 목표도 또렷하다. 태국아시아펜싱선수권 2개의 메달로 국제대회 통산 98번째 메달을 기록했다. 100번째 메달을 향해 오늘도 그녀는 칼을 간다. 20일 개인전에서 99번째, 22일 단체전에서 100번째 메달에 도전한다.
자카르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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