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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먼저다!"
"선수가 먼저다!"를 외치는 모습이었다.
이명호 대한장애인체육회장(61)은 지난달 22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1999년 방콕장애인아시안게임 역도 동메달리스트 출신으로 경기인 최초의 장애인체육회 수장이 됐다. 그가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역사다. 장애인체육의 역사는 필설로 설명하기 힘든 투쟁의 역사였다.
초등학교 시절 팔씨름으로 고등학교 형님들을 줄줄이 돌려세웠던 힘센 동네 꼬마는 스물넷에 장애인 역도선수가 됐다. 지금처럼 운동에만 전념하는 환경은 꿈도 꾸지 못했다. 시계수리 일을 하는 틈틈이 후배들과 함께 역기를 들었다. 후배들을 가르치는 중간중간 독학으로 클래식 기타를 마스터한 성악도 출신의 다재다능한 회장님의 시계는 단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았다. 장애인체육의 길에 들어서면서 후배들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투사같은 치열한 삶이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8명이 2~3년간 무보수로 일하며, 빠듯한 신혼살림에 현금서비스 300만원으로 후배들을 다독여가며 일궈낸 부산장애인체육회의 눈물겨운 탄생,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던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공항 보이콧 사건, 2005년 보건복지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관할이 바뀌면서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정식 태동하기까지 장애인 체육의 역사를 바꾼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에 늘 그가 있었다. 그리고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동시에 열린 지 정확히 30년만에 평창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에서 장애인체육회의 수장으로 참가하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됐다.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 없다.
평창패럴림픽은 9일부터 18일까지 열흘간 평창올림픽과 동일한 강원도 평창, 강릉, 정선 일원에서 열전에 돌입한다. 6경기 6종목(장애인바이애슬론, 장애인스노보드, 장애인아이스하키, 장애인알파인스키, 장애인크로스컨트리스키, 휠체어컬링) 80개 세부종목에 역대 최다 49개국 선수 570명을 포함 1500여 명이 참가한다. 한국선수단은 6개 전종목에 선수 36명을 포함, 역대 최대 규모인 83명의 선수단을 파견하며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종합 10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의 중심에는 언제나 '선수', '사람'이 있다. 부산에서 체육회 조직을 직접 꾸려보고, 2006년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입사해 전문체육부장, 생활체육부장을 두루 거쳐 이천훈련원장을 역임한 이 회장은 실무를 두루 섭렵한 베테랑이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안 좋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업무를 파악하고 있지만,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할 때도 있다"며 허허 웃었다.
이 회장은 직원들과 선수들에게 늘 '디테일'과 준비과정을 강조한다. 평창조직위원회와 정부, 미디어에 끊임없이 '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병기하는 문제를 호소했다. 사소한 일상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이끈다는 믿음이다. 이천훈련원에서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을 위해 210일간의 훈련일수를 확보했고, 스포츠 과학을 적극 도입했고, 우수한 해외지도자들을 영입했으며,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눈부신 경기력 향상도 이뤄냈다.
배리어 프리의 원칙 역시 확고하다. "경사로의 문제는 예산 문제도 있지만 인식의 부재라는 문제도 있다. 하나를 해도 정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휠체어 경사로만 만든다고 능사가 아니다. 경사로 각도는 규정이 있다. 기본은 12분의1, 최소 8분의 1 원칙이다. 계단높이가 1㎝라면 적어도 길이가 8~12㎝가 나와야 한다. 5㎝밖에 안되면 가파라서 휠체어 장애인 혼자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정확하게 만든다고 돈이 더 드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원칙대로 정성을 다해 만들면 된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대충 하면 안된다"고 조목조목 강조했다.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후배 선수들을 향한 강한 믿음도 잊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평창패럴림픽을 대비해서 오랜 세월 열심히 달려왔다. 크로스컨트리의 신의현 선수의 복근을 보면 그간의 훈련량을 짐작할 수 있다. 곧 결실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선수 출신 회장님은 결전을 앞둔 선수단에게 "외유내강의 자세로 조심스럽게, 하지만 철저한 각오로 후회없이 경기에 임하라"고 독려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수장으로서 국민적 관심과 성원도 당부했다. "패럴림픽의 성공이 진정한 올림픽의 완성이다. 메달리스트뿐만 아니라 전 종목 전 선수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평창패럴림픽에는 와일드카드(특별출전권)으로 북한 선수 2명(마유철-김정현, 노르딕스키)이 출전한다. 이 회장은 단순한 출전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을 통해 진정한 남북교류, 남북평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희망했다. "우리가 지닌 장애인 스포츠의 전문성을 북한과 나누고 싶다. 북한의 장애인 체육 수준을 높여나가는 데 우리가 역할을 하고 싶다. 우리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나누고 싶다"고 희망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