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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체육교사를 꿈꾸던 대학생은 8년 전 인생이 바뀌었다. 지난 2010년 학교 게시판에서 썰매 국가대표 선발 포스터를 보고 보디빌더 출신 친구와 함께 재미삼아 지원했다. 말 그대로 참여일 뿐이었다. 부모님에게도 귀띔하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강원도에서 쉬다 온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덜컥 합격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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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도 많았다. 봅슬레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강도 높은 훈련도 힘들었지만 84㎏의 몸무게를 10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었다. 하루에 밥을 15공기씩 먹었고 매일같이 야식도 먹어야 했다. 그러나 원윤종은 이 과정도 근성으로 이겨내며 거구로 재탄생 했다. 강골이긴 했다. 원윤종은 역도선수 출신 석영진과 맞먹는 무게의 바벨을 들 정도로 웨이트 트레이닝도 소홀히하지 않았다.
2년 전에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2016년 1월, 정신적 지주였던 데니스 말콤 로이드 주행 코치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이별 통보에 원윤종은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원윤종은 로이드 코치를 위해 달렸다. 2015~2016시즌 월드컵 4차 대회 동메달 이후 "올시즌 남은 월드컵의 메달을 모두 가져와 달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질주했다. 그리고 캐나다 휘슬러에서 펼쳐진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아시아 최초로 썰매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로이드 코치의 부인이 대회장에 깜짝 방문하자 선수들과 뒤엉켜 다시 한 번 환희와 슬픔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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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2013년 11월 아메리카컵에서 국제무대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13년 12월 국내 최초로 봅슬레이·스켈레톤 실업팀이 강원도청에 창단됐다. 경기도체육회 등에서도 실업팀을 만들 움직임이 보였다. 서영우에게 극적으로 기회가 찾아왔고 2년 뒤 결국 정상에 섰다.
그렇게 원윤종와 서영우는 8년을 기다린 끝에 평창올림픽에 첫발을 뗐다. 지난 18일 펼쳐진 1~2차 시기는 실망, 그 자체였다. 원윤종의 주행 실수로 만족스런 기록을 얻지 못했다. 19일 열린 3~4차 시기에서도 다소 기록을 줄였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원윤종과 서영우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 눈물은 원윤종과 서영우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해줄 것이다.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걸….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