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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슈터 신상훈의 퍽이 우크라이나 골망을 흔드는 순간, 선수들이 빙판 위로 쏟아져 나와 환호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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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국가별 수준차가 크다. IIHF는 세계선수권대회를 6개의 디비전으로 나눠 승강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 정점이 바로 1부리그인 월드챔피언십이다. 세계 최강 16개국이 출전해 톱디비전을 이룬다. 그 아래 디비전1 그룹A와 디비전1 그룹B(3부리그)가 있다. 톱디비전인 월드챔피언십의 하위 두팀이 디비전1 그룹A로 강등하고, 대신 그룹A 2팀이 승격하는 강등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디비전1 그룹B부터 디비전3 그룹B(6부리그)까지는 우승팀만 승격, 최하위팀만 강등된다.
이토록 힘겨운 월드챔피언십행을, 그것도 아시아에서도 변방이었던 한국이 해냈다. 2014년 고양에서 열린 디비전 1 그룹A 대회에서 5전 전패로 최하위에 머물며 디비전 1 그룹 B로 다시 추락한 한국은 2015년 4월 다시 디비전1 그룹A에 복귀한데 이어 이번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월드챔피언십까지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3부리그에 있던 팀이 단 2년만에 월드챔피언십에 오른 것은 100년 가까운 아이스하키 전체 역사를 따져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아이스하키는 철저한 계급제 사회다. 동티모르가 브라질과 붙을 수 있는 축구와는 다르다. 디비전에 따라 맞붙을 수 있는 팀이 정해져 있다. 한국이 지금껏 상대했던 가장 상위 랭킹의 팀은 노르웨이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월드챔피언십 진출로 강팀과 맞붙을 기회가 늘어났다. 향후 발전속도를 더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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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한국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 체코, 스위스(7위)와 함께 A조에 속했다. 본선 진출 12개국 중 최하위인 한국은 '빅6' 두 팀과 한조에 편성됐다. 실력으로 보면 당연히 3전전패가 예상된다. 스포츠에서 '절대'라는 말은 없지만 캐나다, 체코는 한국이 상대할 레벨이 아니다. '빅6'는 2군을 내보내도 무난히 2부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오죽하면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 유명 블로거 '퍽 대디'는 '동계올림픽을 2연패한 캐나다는 NHL 선수들이 불참하더라도 한국에 162대1로 승리할 것'이라고 조롱했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목표는 8강이다. 실제로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동계올림픽 만의 독특한 경기방식 때문이다. 2010년 밴쿠버 대회부터 이어지고 있는 아이스하키 본선 경기방식은 우선 12개 팀이 4팀씩 3개조로 나눠 풀리그를 펼친다. 각 조 1위와 와일드 카드 1팀(각 조 2위 가운데 가장 성적 좋은 팀)이 8강에 오른다. 이후 나머지 8개팀이 조별리그 성적에 맞춰 대진을 짠 뒤 나머지 4장의 8강행 티켓을 놓고 단판 플레이오프를 펼친다. IIHF는 조별리그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기팀들이 조기에 탈락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8강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단판 플레이오프에서 그나마 낮은 순위의 팀을 만나는 것이다. 노르웨이(11위), 슬로베니아(15위)는 물론 힘겨운 상대지만 그나마 해볼만한 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별리그에서 스위스보다는 높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가 이번 대회에서 제압한 카자흐스탄이 지난해 월드챔피언십에서 스위스를 제압한 바 있다. 당시 스위스는 NHL을 누비는 수비수 로만 요시(내쉬빌), 포워드 니노 라이터(미네소타) 등이 나서지 않았다. 이번 평창올림픽 역시 NHL 선수들이 불참할 가능성이 높은만큼 스위스가 지난해 월드챔피언십 전력으로 나온다면 해볼만하다.
한국은 5월부터 평창 모드로 전환한다. 일단 체코, 러시아 등 전지훈련을 계획 중인 한국은 5월 말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IIHF 연차총회에서 평가전 상대, 일정 등을 확정짓는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한국이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할 정도로 경쟁력을 과시한만큼 강팀과의 대결 성사를 기대하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