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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올라간다!"
'눈물의 승격'을 이룬 백 감독. 그의 이름은 두 개다. '짐 팩.' 영어명이다. 그렇다. 그는 이민자다. 국적은 캐나다. 1967년 서울에서 세상의 빛을 처음 봤지만, 한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백 감독은 1985년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170위로 내셔널하키리그(NHL) 피츠버그 펭귄스에 지명됐다. 당당히 세계 최고 무대에서 뛰는 선수가 됐다.
시간이 흘러 지도자의 삶을 살고 있던 백 감독은 2014년 여름, 잊을 수없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것. 망설이지 않았다. 바로 짐을 쌌다. '마음의 고향'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체' 한국은 귀화선수 충원과 외국인 감독-코치 영입을 조건으로 IIHF로부터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그 외국인 감독이 바로 백 감독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했다. 개인 기량과 체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기본적인 전술도 체계화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제로 베이스'였다. 백 감독은 결심했다. 맨땅에서 맨손으로 성공을 일궈보겠노라고.
첫 단추는 자신감 끌어올리기였다. 부임 당시 선수들의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태극마크를 단 엄연한 대표 선수지만, 국제 무대에서의 위상은 밑바닥이었다. 한국에 올림픽 자동 출전권을 부여한 IIHF조차 다른 팀들과의 격차를 우려했을 정도다. 백 감독은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한국 국가대표로서 자부심을 느껴라!"
백 감독의 지도 아래 한국은 달라졌다. 급성장했다. 국내선수 기량이 향상됐다. 귀화선수가 합류하면서 전력도 강화됐다. 하지만 우려는 있었다. 다수의 귀화선수가 들어오면서 팀워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기우였다. '이민자' 백 감독은 귀화선수들에게도 태극마크의 의미를 각인시켰다. 눈동자 색은 다르지만 마음은 동색이었다. 그렇게 한국은 '원 팀'이 됐다.
이제 백 감독의 눈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한국 감독'으로 나서는 올림픽 무대. 백 감독에겐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가 펼쳐지는 곳은 강릉이다. 이곳은 백 감독 모친의 고향. '조국' 한국을 이끄는 백 감독은 어머니의 고향 강릉에서 '기적'을 노래할 수 있을까. 백 감독은 오늘도 '평창 메달 꿈'을 꾼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