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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마다 주주총회를 하는 거잖아요. 엄청나게 긴장되도 기분 좋지 않겠어요?"
황 감독은 숨고르기 중이다. 하지만 언젠가 승부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과연 그는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승부사의 피, 여전히 뜨겁다
황선홍 전 포항 감독은 독일 연수 중 경험했던 도르트문트의 경기 장면을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8만명 규모의 경기장 좌석이 꽉찼는데 골이 들어가자 관중들이 동시에 점핑을 했다. 지진이 난 줄 알 정도였다." 비단 도르트문트 만의 풍경은 아니었다. 한 달 넘게 독일 무대를 누볐던 황 감독이 가장 감탄했던 장면은 엄청난 경기력이 아닌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경기장 마다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밖에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도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에 전율이 올 정도인데 벤치에 있는 감독이나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과연 허투루 경기를 할 수 있겠나."
열정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이탈리아에서도 열기는 마찬가지다. 로마 훈련장에는 매일 훈련 뒤마다 100여명의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로마 클럽하우스는 시내에서 한 번에 올 수 있는 대중교통편이 없는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클럽하우스 앞에 도착해도 철저한 통제 속에 선수들의 귀가 장면 정도만 바라볼 수 있음에도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꺼이 수고를 감수하는 모습에 황 감독도 적잖은 감동을 받은 모양새다. "팬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K리그에서 받았던 사랑이 생각날 때가 있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팬들의 칭찬을 들을 때 아닌가 싶다. 현장을 떠난 뒤 가장 그리운 점이라면 팬들의 열기가 아닐까 싶다."
숨고르기, 그리고 미래
지도자 데뷔 이래 황 감독은 쉴 틈이 없었다. 2003년 은퇴 직후 잉글랜드, 독일 연수를 거쳐 전남 코치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다. 2007년 부산 감독직에 부임해 2010년까지 팀을 이끌었고 이듬해 포항 지휘봉을 잡고 지난해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다. 13년 만에 찾은 지금의 온전한 휴식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황 감독은 "돌아보면 쉬면서도 마음을 비우고자 많은 노력을 했는데 결국엔 축구 생각 뿐이었다. 어떻게 팀을 운영하고 어떤 전술을 활용해야 할 지 고민하는 매 순간은 스트레스였다. 돌아보면 기분좋은 추억이지만 정말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고 웃었다.
유럽 연수는 축구인생 3막으로 가기 위한 준비 단계다. 황 감독이 영원한 '야인'으로 남을 수는 없다. K리그 지도자로 모든 것을 이뤘지만 도전을 멈출 순 없는 법이다.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사실 유럽에서 만원관중 속에 경기를 하는 클럽 지도자를 보면 피가 끓을 수밖에 없다. 승부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웃음). 하지만 좀 더 충전을 해야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행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황 감독 본인은 손사래를 치기 바빴다. "국내든 해외든 딱히 정해놓은 게 없다. 일단은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웃음)." 황 감독은 "차후 행보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유럽에 온 만큼 공부를 하는 데 신경을 쏟고 있다. 차후 행보를 정하더라도 내 나름대로 준비가 되야 한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길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황선홍, 여전히 한국 축구의 미래다
황 감독은 이달 말 귀국한다. 그는 "사실 좀 더 머물면서 축구를 많이 보고 싶은데 이맘때면 유럽 클럽들이 리그 성적 뿐만 아니라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진출 여부를 두고 굉장히 민감한 시기"라며 "천천히 생각하려 한다. 아직까진 시간이 있으니 배울 것도 많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국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6월 프랑스로 다시 건너갈 계획이다. 프랑스에서 펼쳐지는 유로2016을 통해 유럽 축구 트렌드를 좀 더 공부하겠다는 심산이다. 황 감독은 "확실히 일정이 나오진 않았기에 어떤 경기를 볼 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경기들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나중에 쓸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닌가.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역시절 황 감독은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은 전설이었다. 하지만 13년의 지도자 인생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굴곡진 인생이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금 최고가 된 황 감독은 이제 자신과의 싸움을 다시 준비 중이다. "100% 만족하는 축구는 없다. 내 축구는 항상 80%다. 나머지 20%를 채우려 노력할 뿐이다." '황선홍'이라는 이름 석 자로 쓰여갈 한국 축구의 미래가 기대된다.
트리고리아(이탈리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