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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박대통령,빅토르안 그리고 '살얼음판'빙상연맹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02-16 17:06 | 최종수정 2014-02-17 07:10


15일 오후(한국시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전이 열렸다. 금메달을 차지한 러시아 빅토르안(안현수)이 코칭스텝과 환호하고 있다. 뒤는 한국 최광복 코치 소치(러시아)=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4.02.15.

"러시아에 귀화한 안현수 선수는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와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빅토르 안' 안현수를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우리에겐 지금 재능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심없는 지도자와 가르침이 필요하다. 선수를 발굴함에 있어 차별하는 지도자는 훌륭한 인재들의 역량을 사장시키고 우리 체육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일갈했다. 대통령의 일침은 소치 현장에도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15일 밤, 남자쇼트트랙 1500m 결승전, '빅토르 안'의 러시아와 신다운의 한국이 금메달을 사이에 두고 격돌했다.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빅토르 안은 '새 조국'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겼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축전을 보냈다.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러시아 국가를 부르며, 러시아 국민들과 함께 환호했다. 4위로 들어온 신다운은 결승선에서 임페딩 판정을 받으며 실격했다. 최광복 대표팀 코치는 눈앞에서 러시아팀과 환호하는 안현수를 애써 외면했다.

빅토르 안의 금메달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복잡미묘하다. 에이스를 지켜내지 못한 자괴감, 부단한 노력으로 8년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탈환한 '영웅'에 대한 경외심이 혼재됐다. 버린 자식이 꽂은 비수에 찔린 참담함은, 자식을 밀어낸 이들을 향한 원망과 분노로 귀결됐다. 극렬한 비난여론 속에 대한빙상연맹 홈페이지는 문을 닫았다.

네티즌들은 3년전 안현수의 러시아행을 방관한 이들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안현수 아버지' 안기원씨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직접 지목한 '한사람'이 도마에 올랐다. 안씨는 "빙상연맹의 모든 행정을 한사람이 독점해 진행하다 보니 여러 문제 있는 코치들도 선임되고 민주적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CBS '김현정의 뉴스쇼')고 했다. 이 '한사람'과 얽힌 코칭스태프의 이름이 순식간에 포털 검색창을 점령했다. 소위 '라인'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다. 쇼트트랙의 해묵은 파벌 논쟁, 한체대와 비한체대의 대립, 에이스와 비에이스의 대립, 코칭스태프 구타 사건, 짬짜미, 왕따 파문 등 아픈 역사들이 다시 수면 위로 불거졌다.

지난 4년간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할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쇼트트랙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소치올림픽은 '빅토르 안의 올림픽'이 됐다. 천신만고끝에 따낸 박승희의 동메달과 심석희의 은메달은 빅토르 안의 금메달에 묻혀버렸다. 국내에선 비난여론이 들끓고, 소치 현장의 선수들은 부진과 불운에 울고 있다. 대한빙상연맹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연맹 관계자는 "소치 현장에선 대책회의가 이어지고 있다. 선수단은 전쟁중인데 이런 문제가 불거져 난감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사자'인 안현수와 안현수의 아버지는 원망도 원한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빅토르 안 후폭풍'은 소치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귀화 배경을 둘러싼 강도 높은 조사도 이뤄질 것이다.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가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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