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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는 그의 무대가 아니었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모태범은 20개 조 가운데 19조의 아웃코스에서 출발했다. 1000m에선에서는 보통 인코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먼저 인코스를 두 번 탄 뒤에 아웃코스를 두 번 지나고, 다시 인코스를 한 번 돌아 결승선에 도착한다. 출발선에 차이를 둬 거리는 똑같지만, 먼저 달려나가는 선수를 바라보며 경쟁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 두 번의 인코스를 달려 스피드를 끌어올린 뒤 부드럽게 아웃코스로 진입할 수 있다. 아웃코스는 정반대다. 그러나 1000m에서 금, 은메달을 차지한 네덜란드의 스테판 흐로타워스(1분08초39)와 캐나다의 데니 모리슨(1분08초43)은 모두 아웃코스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컨디션이었다. 빠르게 200m를 통과, 600m까지 좋은 기록을 낸 후 마지막 한 바퀴를 버티는 전략이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초반 200m를 16초42로 통과하며 전체 선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냈지만 이후 가속도가 붙지 않았다. 600m에서 상대 선수들을 0.7초 이상 제치겠다는 전략이 무너졌다. 모태범의 600m기록은 41초91이었다. 9위에 머물렀다. 여기서 승부는 끝났다. 이미 체력이 떨어진 모태범은 폭발적인 스퍼트를 할 여유가 없었다. 마지막 바퀴에서 힘을 내지 못했다. 밴쿠버에선 200m를 16초39, 600m를 41초75에 탄 뒤, 1000m를 1분09초12에 달려 2위에 올랐지만 재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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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심경은 복잡했다. "반성해야죠"라는 말을 막상 꺼냈지만 속상하고, 화가났다. 모든 포커스를 500m가 아닌 1000m에 맞췄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되게 준비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도 위안은 있다. 실패를 통해 다음 시즌과 앞으로의 4년을 준비하는 데 노하우가 쌓인 점은 긍정적이다. 구간, 구간 기록도 향상됐다. 다만 올림픽은 변수로 춤을 췄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흑인 선수로는 최초로 10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는 밴쿠버도 제패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졌지만 8위(1분09초12)로 떨어졌다. 명암이다. 모태범은 "올림픽은 신기하다. 독보적인 선두가 없다. 나도 좀 더 최선을 다하면 한 번은 기회가 오지않을까 싶다"고 했다.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명예회복의 기회를 4년 후로 미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약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다.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이 필수인 것 같다. 1000m는 계속 실패하더라도 꼭 해보고 싶다. 500m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땄는데 1000m에서도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싶다. 최대한 만들어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
절망할 필요가 없다. 소치는 끝이났지만 평창은 이제 시작이다. 실패 후 곧바로 도전을 선언한 그에게 채찍보다는 박수가 먼저인 것 같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