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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소치, 응답하라 2014]②컬링대표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4-01-28 07:35


사진제공=대한컬링경기연맹

#1. 시작

경기도 체육회팀 선수들이 일신상의 이유로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팀의 버팀목 신미선과 이현정만이 남았다. 우승은 커녕 대회 참가도 불투명했다. 정영섭 감독은 예전에 봤던 재능있는 선수들이 생각났다.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기 시작했다. 이슬비는 전 소속팀과의 불화로 브러시를 놓고 유치원 보조교사를 하고 있었다. 김지선은 어학연수를 위해 간 중국에서도 눈칫밥 먹어가며 컬링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기대를 안고 돌아왔지만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김은지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특기자로 인정받지 못해 학비를 대지 못하고 휴학 중이었다. 모두 손에서 컬링을 뗀 상태였다. 정 감독은 이들을 설득했다. 복귀하겠다는 대답을 들을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슴 속 깊이 컬링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꿈틀거렸다. 정 감독은 이들의 눈빛을 보며 '얘들의 아픔을 잘 이용하면 경기력까지 이어질 수 있겠구나'는 확신을 얻었다. 2009년, '공포의 외인구단'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다.

#2. 시련

서로를 잘 알고 있던 이들은 처음부터 마음이 잘 맞았다. 컬링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만큼 연습에만 전념했다. 한명이 부진하면 함께 힘을 모아 극복해나갔다. 맏언니가 이끌고, 동생들이 받춰주는 팀워크는 최고였다. 문제는 여건이었다. 전용 연습장이 없어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훈련하는 곳에서 컬링 연습을 하니 주변의 눈길이 따가웠다. 스케이트화가 아니다보니 모래나 먼지를 달고 링크 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장비도 문제였다. 외국 선수들은 한경기 끝나면 브러시 헤드를 바꾸는데, 빨아서 써야했다. 때때로 외국 선수들이 버린 헤드를 주어와서 쓴 경우도 있었다. 중국 하얼빈에서 전지 훈련하는데 텃세 때문에 새벽 아니면 한밤중에 훈련을 해야했다. 캐나다 훈련 때는 훈련비가 부족해 민박집에서 직접 장보고 밥을 해먹으면서 운동했다. 그나마도 주부 선수들이 사정해가며 돈을 깎아낸 결과다. 그래도 견뎠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3. 기적

2012년 3월 캐나다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2009년 3승8패(10위), 2011년 2승9패(11위)에 그친 이들에 기대를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첫 경기였던 17일 체코전에서 3대6으로 졌을 때만 해도 '역시나'였다. 자비로 현지에 날아간 정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쳤다. "그동안 한 고생을 생각해보자. 잃을 것이 없다. 우리 실력이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 거짓말처럼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 스웨덴을 상대로 9대8 승리를 거두며 자신감을 얻었다. 얼음 적응에도 성공하며 준비한 플레이를 마음껏 구사했다. 연승가도를 달린 대표팀은 사상 첫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전세계 컬링이 놀랐다. 캐나다 현지 팬들이 대표팀에 케이크 선물을 주기도 했다. 첫 메달의 꿈이 가시권에 온 순간,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너무나 지쳤다. 마지막 순간 홈팀 캐나다에 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쓸쓸히 떠났던 이들은 환대 속에 귀국했다.

#4. 환희

달콤함은 잠깐이었다. 경북체육회에 패하며 태극마크를 빼앗겼다. 절치부심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다시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세계선수권 기적으로 어렵게 따낸 소치동계올림픽 티켓을 다시 얻었다. 한국 컬링사에서 첫 올림픽 출전이라는 영광도 안았다. 올림픽행이 결정되자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신세계와 KB국민은행이 후원자로 나섰다. 훈련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임신 때문에 팀을 떠난 이현정 대신 엄민지가 가세하며 지금의 팀이 완성됐다. 올림픽에 대비해 일본, 중국, 캐나다를 돌며 해외 전지훈련을 했다. 외국의 유명 클럽팀과 연습 경기를 하고, 다양한 빙질을 경험했다. 의미있는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오픈에서 강호 중국, 캐나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11월 아시아태평양 컬링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섰다. 메달 전망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스위스, 스웨덴 중 한팀을 꺾으면 메달꿈은 현실이 된다. 그녀들은 자만하지 않고, 묵묵히 빙판위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생애 최고의 순간을 꿈꾸며 말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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