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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별명이 한때 '647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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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업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심리학' 수업이었다. 고려대 운동부 학생들의 심리 멘토인 최영준 교수가 대학원 학생들과 학부 학생들을 위한 실기 수업을 기획했다. 대학 최강 고려대 럭비부 학생들은 '김자인 선생님'의 등장에 반색했다. 공부하는 선배 선수가, 공부하는 후배 선수를 가르치는 뜻깊은 수업이 시작됐다. 김자인을 비롯한 4명의 석사과정 선생님들이 '일일 멘토'로 나섰다. 럭비부 선수들이 4개조로 나뉘어 앉았다. 김자인은 선수들과 운동할 때 멘탈과 심리 상태, 스포츠 심리 상담의 효용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자신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김자인 선수'조, 씩씩한 럭비선수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1학년인 김영훈군(19)은 "정말 예쁘시고, 같은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활기차게 토론을 이끌어주셔서 정말 재밌었다"고 했다. 최영준 교수는 "자인이는 공부하는 선수의 모범사례다. 예의바르고 스마트하다. 운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 자인이 같은 선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공부의 이유 '준비된 사람 되고 싶어'
김자인은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07학번이다. 학부 때부터 공부와 운동을 충실히 병행해왔다.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동기이자 에이전트인 이경주 올댓스포츠 대리는 "김자인 선수는 대학교 때도 오전에 공항에 도착하면, 오후에 수업에 들어갈 만큼 성실한 스타일이었다. 7명의 여자동기들과도 두루 친하다"고 귀띔했다.
김자인은 "내게 공부는 습관"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아예 놓은 적은 없다. 1년에 10여개의 대회에 참가하는 살인 스케줄 속에서도 비행기에서 학교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했다. 스포츠 클라이밍에서의 집중력은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물론 처음부터 교실이 편안했던 건 아니다.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처음엔 대회보다 더 긴장됐다. 떨려서 말이 안나온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수업 현장에서 지켜본 김자인은 발표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파워포인트 파일도 척척 만들어내는 만능선수였다.
극한의 스포츠인 클라이밍과 공부, 둘 중엔 어느 것이 어려울까. 김자인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둘다 어렵지만 클라이밍은 재밌다. 코스가 무궁무진하다. 매번 다른 코스, 새로운 도전이 이어지기 때문에 점점 재밌어진다. 사실 공부는 재밌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습관처럼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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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은 '공부하는 선수'의 롤모델로 서슴없이 '학교선배' 장미란을 꼽았다. "사실 학교에서 보진 못했고, 어느 행사에서 미란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선수로서 대단한 업적을 이뤘는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스포츠를 통해 더 좋은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모습이 멋지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김자인은 스포츠를 통한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 11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진행된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을 타고 오르는 '빌더링' 이벤트는 뜨거운 이슈가 됐다. 올라가는 높이만큼 기부금이 적립되는 방식이었다.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클라이밍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기뻤다"며 생긋 웃었다. 주어진 시간 내 15m 암벽을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소녀가, 주어진 인생 시간표에선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자못 궁금해졌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