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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경기장마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한 발 한 발의 결과에 탄성과 탄식이 교차했다. 새로운 제도 때문이었다.
국제사격연맹(ISSF)은 올해 많은 것을 바꾸었다. '서바이벌 결선' 제도가 대표적이다. 본선 점수가 결선에 연계되지 않는다. 그저 결선에 진출할 상위 8명을 뽑는데만 쓰인다. 결선에서는 본선 1위부터 8위까지가 다시 0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대신 각 종목의 특성에 맞게 최하위 한 명씩 탈락시킨다. 더욱 재미있는 TV중계를 하기 위한 묘안이었다.
이 날도 이변이 나왔다. 본선 7위로 결선에 오른 심상보(창원시청)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3위 3명만 쏜 8번째 시리즈에서 대역전승을 일구어냈다. 심상보는 3위였다. 2위 한승우(KT)를 0.1점차로 압박했다. 한승우는 8번째 시리즈 2발을 16.6점으로 마쳤다. 두번째 발이 6.6점이었다. 실수였다. 반면 심상보는 18.8점을 쐈다. 한승우가 탈락했다. 심상보는 "본선 기록이 누적되지 않아 좋은 성적을 냈다. 본선 성적 때문에 미리 포기하는 선수들이 없는 것이 새로운 제도의 장점이다"고 했다. 우승을 차지한 진종오도 "더 재미있어졌다. 긴장을 안하는 선수가 이긴다. 나도 서바이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여자 25m 권총은 또 다른 방식이다. 지난해까지는 본선 점수로 상위 8명을 뽑았다. 8명의 결선 점수를 본선 점수에 합쳐 우승자를 꼽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르다. 일단 본선은 완사와 급사로 나뉘어 점수를 매긴다. 점수가 좋은 상위 8명을 뽑는다. 결선에서는 점수제를 쓰지 않는다. 히트(hit)를 사용한다. 10.3점 이상이면 히트가 된다. 5발씩 5개 시리즈, 총 25발의 히트 개수로 우열을 가린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3~4위, 1~2위가 맞대결을 펼친다. 5발이 한 시리즈다. 히트 수가 많은 쪽이 승리한다. 승리하면 승점 2점을 갖는다. 비기면 1점을 나누어 가진다. 지면 승점이 없다. 승점 7점 이상을 먼저 따내는 선수가 이긴다. 언제나 역전의 가능성이 있다.
결승전에서는 김장미와 '임산부 사수' 김윤미(서산시청)가 맞붙었다. 김윤미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임신 7개월의 몸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유명해졌다. 김장미는 3시리즈까지 2-4로 밀렸다. 4번째 시리즈와 5번째 시리즈 승리로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 6번째 시리즈에서 비기면서 7대5로 이겼다. 경기 후 김윤미는 "바뀌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다"고 했다. 김장미는 "역전의 묘미는 있다"면서도 "본선 성적이 의미가 없어져 아쉽다. 본선에서 점수를 벌어놓을 필요가 없다. 선수들도 결선에 들 정도로 대충 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새 방식에 적응이 관건
사격은 2012년 런던올림픽 최고 효자종목이었다. 2관왕 진종오와 김장미가 3개의 금메달을 합작했다. 최영래와 김종현이 은메달을 따냈다.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로 최고의 성적을 냈다.
런던의 영광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이어가려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한국 사격은 잘 적응하고 있다. 김장미는 5월 열린 포트베닝 월드컵에서 여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을 따냈다. 김경애(동해시청)도 같은 대회 여자 25m 권총에서 금맥을 캤다. 진종오는 지난주 뮌헨 월드컵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연착륙 중인 권총에 비해 소총은 적응이 필요하다. 올해 국제무대에서 아직 메달이 없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소총을 쐈던 김장미는 "소총은 본선 성적의 비중이 크다. 본선을 준비하고 경기를 치르는 데만 3~4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소총은 총을 조립하고 사격복을 착용하는 등 준비 과정이 많다. 김장미는 "그럼에도 결선에서 본선 성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쉽다. 전세계적으로도 불만이 크다. 흡사 마라톤에서 1~8위로 들어온 선수에게 가위바위보로 최종 순위를 정하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창원=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