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떨려요. 이겨도 똑같고, 져도 똑같아요."
'아홉살 탁구신동' 신유빈(군포 화산초)은 '강심장'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언니들과의 수싸움에서도 웬만해서 밀리는 법이 없다. 동그란 얼굴의 깜찍한 꼬마가 녹색테이블 앞에만 서면 못말리는 '전사'가 된다. 1m36의 작은 키로 혼신의 힘을 다해 날리는 강력한 백핸드드라이브는 최고의 무기다. 매서운 눈썰미로 상대의 약점을 읽어낸다. 이길 때나 질 때나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아는 프로다. 언니들과의 맞대결이 떨리지 않느냐고 묻자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2009년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강호동 앞에서 할말을 다하며 재능을 뽐냈던 바로 그 당찬 '신유빈'이다. 이미 다섯살때부터 '신동'으로 탁구계 안팎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그 '꼬마신동'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니 반갑다. 성장세가 무섭다.
초등학교 3학년 신유빈은 지난달 15일 경기도 교육감기 겸 대통령기 시도탁구 경기도 선발전에서 전종목 우승의 쾌거를 일궜다. 탁구계에 잔잔한 이슈가 됐다. 동년배중엔 적수가 없다. 지난 2년간 같은 학년과의 대결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다. 같은 학년을 상대로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무실세트' 승리 기록을 이어왔다. 당연히 3-4학년부 단식 우승, 단체전, 복식 우승은 예견됐다. 신유빈은 이날 학년 구분 없이 진행된 오픈 단식에서 5-6학년 에이스 '언니'들을 줄줄이 돌려세우며 깜짝우승을 차지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4개의 우승컵을 한번에 들어올렸다. 3월 23~26일 펼쳐진 전국초등학교 탁구대회 겸 호프스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신유빈은 승승장구했다. 3학년부에서 당당하게 우승했다.
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실업 탁구선수 출신 아버지 신수현씨의 열정이 통했다. 신씨가 운영하는 탁구클럽은 유빈이의 놀이터다.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녹색테이블과 탁구공을 장난감 삼았다. 탁구선수인 5살 터울의 언니 신수정(14·군포중)을 졸졸 따라다니며 어깨 너머로 탁구를 배웠다. 신씨는 작은 딸에게 범상찮은 '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드라이브는 공의 윗면을 쳐야 하거든요. 유빈이가 일곱살 때인데, 시범을 보였더니 키가 작으니까 점프를 하면서 기어이 윗면을 쳐내더라고요.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죠." 유빈이는 당차고 영리하다. 학습능력도 빠르다. 코리아오픈 현장에서도 일본 에이스 이시카와 카스미의 플레이를 설명하며 금방 몸으로 재현해보였다.
주중에는 학교와 아빠의 탁구클럽에서 놀면서 훈련을 한다. 유빈이에게 여전히 탁구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놀이다. 하루 6시간 넘게 탁구공과 씨름한다. 탁구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재밌는 것 80%, 힘든 것 20%"라며 생긋 웃는다. 이달 초 코리아오픈에서 '탁구얼짱' 서효원(26·한국마사회)의 단식 우승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효원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학교체육에선 3학년 수준을 훌쩍 넘어선 '탁구영재' 유빈이만을 위한 맞춤형 훈련이 어렵다.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도 전무한 상황이다. 탁구클럽을 찾는 동호인 삼촌들이 서브, 2구, 3구 훈련 파트너다. 주말에는 삼성생명탁구단의 배려속에 실업팀 언니 오빠들과 함께 연습한다. 깜찍한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유빈이는 탁구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유남규 남자대표팀 감독 역시 유빈이의 든든한 팬이자 후견자다.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이은실 삼성생명 여자탁구 코치는 직접 볼박스 훈련을 돕고 나섰다. "재능이 남다르다. 드라이브 회전량이 초등학교 수준 이상이다. 영리하고 집중력이 강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겨울 이후 유빈이의 탁구는 더욱 강해졌다. 초등학교 랭킹 1,2위 '언니들'인 이승미(12) 홍순수(12)가 있는 천안 용곡초등학교에서 동계훈련을 함께했다. 늘 이기는 것에만 익숙했던 '신동'이 강력한 언니들을 만났다. 지는 법도 배웠다. 패배를 경험하며 오히려 더 강인해졌다. 경기도 대표자격을 확보해, 8월 경기도 수원에서 열리는 동아시아호프스대회에 나설 예정이다. '탁구 엘리트의 필수코스'를 밟게 됐다.
신유빈은 24일까지 충북 단양군 단양국민체육센터에서 진행중인 제59회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에도 출전했다.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부, 일반부까지 전국의 모든 종별 탁구팀이 출전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회다. '아홉살 신동' 신유빈이 학년 구분없이 맞붙는 단식에서 어디까지 올라갈지가 관전포인트였다. 18일 오후 1회전을 부전승으로 올라간 후, 2회전에서 만난 5학년 언니 김채원(서울 고은초)을 3대0으로 꺾었다. 19일 역시 5학년 박유미(군산 대야초)를 3대0으로 돌려세웠다. 21일 8강에서'국내랭킹 1위' 6학년 이승미에게 분패했지만, 최연소 8강에 오르며 실력을 입증했다.
'탁구신동'의 신화는 이제 시작이다. 3세에 탁구를 시작, 5학년이던 11세 7개월에 최연소 탁구대표로 발탁됐고, 이후 세계적 에이스로 성장한 일본의 '아이짱' 후쿠하라 아이(25)가 부럽잖다. 검증된 재능을 키워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최연소 여자국가대표의 탄생을 기다린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