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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존재감 사라진 미국 남자테니스 왜?

정안지 기자

기사입력 2012-09-17 17:32



지난주 화요일(한국시각) 막을 내린 US오픈을 끝으로 2012년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의 승자가 모두 가려졌다. 남자테니스 세계 1위 로저 페더러(스위스), 2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3위 앤디 머레이(영국), 4위 라파엘 나달(스페인) 등이 각각 윔블던, 호주오픈, US오픈, 프랑스오픈을 거머쥐면서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남자 세계 랭킹 1위~4위에 속한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이른바 '4대 천왕'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영국의 앤디 머레이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무려 76년 만에 영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거머쥐는 감격을 누리기도 하였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US 오픈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앤디 머레이의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른 국적의 각기 다른 선수들이 4대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나눠 가지기는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이다. 2002년에는 호주 오픈에서 토마스 요한슨(스웨덴), 프랑스 오픈 알버트 코스타(스페인), 윔블던 레이튼 휴이트(호주), US오픈 피트 샘프라스(미국) 등이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다. 10년 만에 황금분할이 이루어진 올해 메이저 대회 타이틀은 세계 1위부터 4위에 속한 선수들이 가져갔다는 점에서 더욱 이채롭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메이저대회 타이틀은 라파엘 나달 (5회), 노박 조코비치 (4회), 로저 페더러 (2회), 앤디 머레이 (1회) 등이 나눠서 차지하였다. 2006년부터로 범위를 넓혀도 이 4명의 선수 외에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는 2009년 US 오픈을 석권한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틴 델 포트로 단 한 명뿐이다.

최근의 메이저대회 남자단식 챔피언 리스트를 보면 익숙했던 국가의 선수들이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때 세계 남자테니스를 주름 잡았던 미국 선수들이 실종된 것이다. 2003년 US오픈에서 앤디 로딕이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 9년 동안 미국 선수들의 이름은 눈에 뜨이지 않고 있다.

2004년부터 로저 페더러가 남자 테니스계를 석권하였고, 이후 라파엘 나달이 로저 페더러와 쌍두마차 시대를 열면서 좀처럼 그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최근 3,4년전부터 노박 조코비치와 앤디 머레이 등이 새롭게 떠오르면서 춘추 전국시대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은 피트 샘프라스와 안드레 애거시가 남자 테니스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이외에 짐 쿠리어, 마이클 창, 토드 마틴 등 각기 개성이 뚜렷한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남자 테니스는 미국 선수들이 지배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샘프라스와 애거시가 은퇴한 이후 미국 남자테니스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신성으로 부각되었던 앤디 로딕은 2003년 US오픈을 석권한 이후 번번히 페더러의 벽에 막히면서 좌초했고, 또한 한창 전성기의 실력을 발휘해야 될 시기에는 좀처럼 자신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나마 2009년 몰라보게 달라진 평정심을 내세워 윔블던 결승에서 페더러와 풀세트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이 때가 앤디 로딕의 마지막 불꽃이 되고 말았다. 앤디 로딕은 2012년 US 오픈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한때 세계 남자 테니스를 주름 잡았던 미국이 이토록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 '블리처리포트'는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우선 테니스의 특성상 개인의 혹독한 조련을 통해 실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나게 된다. 어릴 적부터 혹독한 조련이 필요한 스포츠이다. 안드레 애거시도 테니스를 처음 시작할 당시 매일 1,000번의 스트로크 연습을 통해 기량을 연마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유소년 세대에서는 혹독한 조련을 감수할 정도로 테니스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또한 테니스처럼 개인 종목인 골프의 경우 타이거 우즈의 신드롬이 불면서 오히려 골프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테니스 유망주들이 줄어드는 원인이라고 한다.

또한 미식축구, 농구, 야구 등 같은 노력을 들이면 훨씬 더 많은 관심과 부를 누릴 수 있는 종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미국 전체적으로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다. 미국 테니스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허술한 관리체계도 유망주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 테니스의 전설적인 스타인 존 매켄로가 직접 관리를 맡으면서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 테니스의 침체기는 1980년대 중반 이반 렌들(체코), 보리스 베커(독일), 메츠 빌란더(스웨덴) 등 유럽권 선수들이 득세하던 당시와 흡사하다. 존 매켄로와 지미 코너스의 은퇴 이후 1980년대 중,후반 미국 테니스는 깊은 침체기를 겪었는데, 1989년 중국계 선수인 마이클 창이 17세의 나이에 깜짝 우승을 차지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1990년 US오픈에서 19세의 피트 샘프라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거대한 돌풍을 예고하게 된다. 이어 1992년 윔블던에서 안드레 애거시가 챔피언에 오르면서 미국 테니스는 부활의 시동을 걸게 되고, 이후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현재도 로져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등 유럽권 선수들의 전성기에 기가 눌린 상황이지만 마이클 창, 피트 샘프라스처럼 아무도 예상치 못한 깜짝 스타가 등장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다. 과연 미국 테니스의 침체기가 언제쯤 종료될지 지켜보는 것도 향후 남자 테니스를 관전하는 또 다른 흥미가 될 것이다. <양형진 객원기자, 나루세의 不老句(http://blog.naver.com/yhjmania)>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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