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올림픽영웅 울리는 악플,세계5위 한국'부끄러운 자화상'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08-30 09:13


◇런던올림픽 결선 무대 곤봉 연기를 위해 포디움에 들어서기 직전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손연재.
 런던특별취재단

올림픽 영웅들을 향해 근거없는 악성 댓글을 남기는 못된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런던올림픽 이후 주가가 오른 스포츠스타들이 뜨거운 스타덤 이면에서 남모를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익명성 뒤에 철저히 숨은 일부 네티즌들이 작정하고 질러대는 '악플'의 수위가 도를 넘었다. 선수들이 속으로 울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체조 금메달 직후 비닐하우스 집으로 화제를 모은 양학선(20·한체대)은 "가난을 이용해 돈 번다는 악플이 가슴 아팠다"고 털어놨었다. "나는 부모님이 창피하지도, 가난이 창피하지도 않다. 그러니 숨길 필요도 없고, 떳떳하다." 신세대답게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나온 기사를 실시간으로 즐겨 읽는다. 당연히 댓글에도 눈이 간다.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 28일 양학선을 만났다. 이날 신한금융지주와 후원 계약을 맺은 양학선 기사 아래에는 비닐하우스의 안위를 걱정하는 네티즌들도 많았지만, 어이없는 악플도 이어졌다. '후원금 많이 받았으니 조만간 비닐하우스 털러 가야겠다'는 악플에 양학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 이해가 안돼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쓰는지…"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29일 코카콜라체육대상 7월 MVP 시상을 위해 만난 신아람(26·계룡시청) 역시 아픔을 토로했다. 또렷한 이목구비의 신아람은 미인이라는 찬사에 "외모에 대한 악플이 진짜 많다"며 웃었다. '수술했네' '못생겼네' 이런저런 악플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주위에선 "런던올림픽 후 이슈가 되니 질투하나 보다,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해줬지만 솔직히 말처럼 쉽지 않다. "동료인 금메달리스트 김지연 선수 기사 아래에도 같은 사람이 단 듯한 내 욕이 달려 있더라"며 웃었다. 신아람은 "내가 연예인도, 스타도 아닌데 이해가 전혀 안됐다"고 했다. 이해는 여전히 안되지만 최근에서야 마음을 다잡았다. "어제 보니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연예인 셀카 아래에도 '못생겼다' '대체 어디가 예쁘냐'는 악플이 달리더라. 나한테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 원래 이런 거구나"라며 그냥 체념했다고 했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8·세종고) 역시 스타덤과 동시에 악플에 시달렸다. "나는 그냥 리듬체조 선수이고,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고등학생일 뿐인데…"라는 말로 섭섭함을 드러냈다. '메달도 없고, 성적도 없는 애'라는 악플은 열여덟 소녀의 가슴에 큰 상처가 됐다. 마음의 상처를 독한 훈련으로 이겨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런던올림픽 결선 무대에서 개인종합 5위의 최고성적을 거둔 후 "리듬체조와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를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악플은 '스타'의 숙명이다. 그러나 스포츠 스타 대부분은 스스로를 '스타'가 아닌 '선수'로 인식한다. 가끔씩 예능, CF 외도를 하지만 본업이 선수이고,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가욋일보다 선행한다는 사실쯤은 누구보다 잘 안다. 1년의 80~90% 이상을 훈련에 쏟아붓는다. 4년간의 온전한 땀으로 영광을 일궈낸 올림픽 영웅들, 칭찬과 격려만 받아도 부족할 이들이 때아닌 악플에 괴로워하고 있다. 운동밖에 모르고 살아왔다. 올림픽 메달 이후의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때론 버겁다. 누군가 무심코 던지는 돌멩이에 상처를 받아도 일일이 대응할 시간도, 수단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분명한 건 이 '표현의 자유'가 '무분별한 막말과 악성 댓글'의 자유는 아니라는 점이다. 올림픽 영웅들을 향한 악플의 수위는 도를 넘었다. 런던올림픽 세계 5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이들에 대한 겸허한 인정과 축하는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이다. 우리들의 영웅을 스스로 지켜내는 일은 소중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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