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수영 영웅' 박태환(23·SK텔레콤)은 또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지난 23일 스포츠조선이 주최하고 질레트 퓨전 프로글라이드가 후원하는 '2012 런던 올림픽 최고의 선수 어워드'에 참석한 박태환과 런던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마주앉았다. 수영만 알고, 수영만 말하던 박태환이 수영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살짝 귀띔했다.
하루 4만~5만m, 물살만 갈라왔다. 한국나이로 스물네살,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10대에 스포츠계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 우승, 2008년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까지 약관 열아홉의 나이에 수영선수로서의 꿈을 모두 이뤘다. "지금 나이에 계속 성적에 욕심내고 기를 쓰면 오히려 탈이 날 것같다. 인천아시안게임, 한두 종목은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에 내가 출전해 도움이 되고 이슈가 된다면, 성적보다 그런 쪽에 비중을 두고 싶다"며 웃었다.
박태환은 "이제 제2의 꿈을 꿔야할 시점"이라고 명시했다. "'제2의 인생' 제목은 공부다. 어릴 때 채우지 못한 지식을 채워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단국대 대학원에서 학업에 매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단국공고에서 실시한 한달간의 교생실습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늘 가르침만 받다가 직접 가르쳐보니 말 한마디에 아이들의 목표와 생각이 바뀌는 게 무서우면서도 보람있더라. 내 말 한마디에 단 1명이라도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뀔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실격 직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박태환은 놀라우리만큼 침착했다. "정확한 상황을 몰라서요.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게요"라며 자리를 떴었다. 어떻게 그렇게 침착했냐는 질문에 "오르락내리락한 수영 인생이 도움이 됐다. 8년 전 아테네에서 실격이 없었고, 3년 전 로마에서도 그럭저럭 성적을 냈다면 런던에선 정신을 못차렸을 것같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의연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같다"고 설명했다. 대중의 뜨거운 갈채와 냉혹한 비난 사이 소년은 강해졌다. 자신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웠다. "터치패드를 찍고 올라오는데 실격 판정을 보고 '뭔가 남다른 일이 있겠다'고 예감했다. '잘못한 게 없었기 때문에 분명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은 드러날 것이라고 믿었다"며 웃었다. 실격 직후 인터뷰로 비난 여론에 휩싸였던 생방송 인터뷰에 대해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고, 상황을 알지 못해, 제대로 답해드리지 못한 것이 오히려 죄송하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롤러코스터를 탄 하루에 대해서도 오히려 "나는 천운과 인복이 있는 선수"라며 감사를 표했다.
실격과 실격 번복이 이어진 그날, 마이클 볼 전담코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볼 감독님이 없었다면 결승에 올라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올라갔더라도 꼴찌했을 것"이라는 말로 무한신뢰를 표했다. "볼 감독님은 초능력자 같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신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해주신다. 내 수영 인생에서 단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볼 감독님을 베이징 전에 만났다면 하는 것이다. 금메달은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기록적으로는 내 목표를 그때 이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태환은 은메달 2개를 따낸 이번 올림픽의 준비과정만큼은 '금메달급'이었다고 자평했다. 준비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을 지언정 후회는 없다. 27일 발간되는 자서전 '프리스타일 히어로'(중앙북스)의 최종교열을 보며 '볼 코치'라는 호칭을 일일이 '볼 감독님'이라고 수정했다. 박태환에게 마이클 볼은 영원한 스승이다.
'아름다운 청년' 박태환
'베이징 금메달' 직후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런던 은메달' 이후 더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대중은 '수영만 잘하는 선수' 박태환보다 '역경과 시련을 이겨낸 영웅' 박태환과 그의 눈물에 더욱 열광했다. '인간' 박태환의 스토리는 2% 부족한 은메달로 인해 더욱 풍성하고 따뜻해졌다. 영광과 시련을 오가며 '소년' 박태환은 단단하고 성숙한 '청년'이 됐다. '최고의 선수 어워드'에 참석한 팬들은 박태환을 향해 일제히 "수영요정!"이라는 애칭을 연호했다.
'수영요정'답게 아름다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3일 동네 아파트 주민들과 후원사인 휠라코리아에게 감사의 떡을 돌려 화제가 됐다. "미래를 향한 진취적이고 아름다운 청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수영을 하느라 채우지 못했던 인생의 빈공간은 메우고, 수영을 하며 받아온 넘치는 사랑은 나눌 생각이다. 경험에 기반한 강연과 사회공헌, 봉사활동 등 적극적인 소통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끝나면 무조건 연애를 하겠다던 굳은 결심 역시 변함 없다. 호주 전훈 내내 주말이 가장 외롭고 힘들었단다. "친형같은 에이전트 손석배 팀장에게 맨날 소개팅을 해달라고 조르는데 결과물이 없다"며 투덜댄다. 박태환의 이상형은 "착한 여자, 자기 관리 잘하는 여자"다. 너무 예쁘면 오히려 부담스럽단다. "어딜 가나 다른 사람들도 다 쳐다볼 것 같다"며 귀여운 질투심을 드러냈다.
분위기는 잘 맞추지만, 노는 걸 즐기진 않는다. 사실 수영만 하느라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다. "요즘은 다들 클럽 가는 거 좋아하던데, 저는 클럽 싫어하고 가본 적도 없어요. 그냥 착하고, 자기관리 잘하는 여자가 좋아요"라며 싱긋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