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런던]당신의 눈물에 대한민국이 행복했다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2-08-13 08:28


'당신의 눈물에 대한민국이 행복했습니다.'

감동 환희 아쉬움과 한탄. 올림픽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명장면'은 바로 선수들의 눈물이다. 4년간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다. 기쁨의 눈물도, 아쉬움의 눈물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땀의 결실이다. 유독 런던에서는 눈물이 많았다. 시상대에 선 그들의 눈물에는 감동이 있었다. 시상대에 서지 못한 이들의 눈물에는 미래가 있었다. 오심과 편파판정으로 물든 '오심 올림픽'에서 억울하게 흘린 눈물도 있지만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런던의 눈물'에 행복했고 또 행복했다.


기쁨의 눈물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낸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지난 3년간 올림픽을 준비하며 선수 중복 차출과 18인 선택의 순간으로 수없이 속으로 눈물을 흘린 그였지만 한국 축구의 새로운 '약속의 땅' 영국 카디프시티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는 달랐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때 밝게 웃던 그의 표정이 오버랩됐다. 10년마다 한국축구사를 새로 쓴 주인공의 눈물에 새벽잠을 설쳐가며 응원한 국민들은 최고의 아침을 맞이했다.

한국 여자 양궁의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눈물로 쏜 마지막 화살은 과녁이 아닌 한국인들의 마음에 명중했다. 기보배는 2일(한국시각)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슛오프 접전끝에 승리했다. 자신의 올림픽 개인전 첫 금메달이자 첫 2관왕을 안겨준 값진 승리였다. 2008년 베이징대회에서 잠시 끊어졌던 여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도 그로 인해 명맥을 잇게 됐다. 사실 슛오프에서 쏜 기보배의 마지막 화살은 실수였다. 8점을 쐈다. 기보배는 "바람이 부는 바람에 화살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갔다. 나도 당황했는데 TV로 보고 있는 국민들도 놀랐을 것"이라며 "상대가 쏘는 마지막 화살을 보지 못했다. 기도하고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흘린 생애 가장 행복했던 눈물은 국민들의 눈물샘도 정확히 명중시켰다.


오심의 눈물

승자에서 패자가 된 뒤에도 참았던 눈물이다. 남자 유도 66㎏급의 조준호(24·한국마사회)는 8강전에서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가 재심에 의해 순간 패자가 됐다. 그러나 판정번복의 억울함을 딛고 그는 8강에서 끊어진 인대로 패자결정전과 동메달결정전을 치렀다. 동메달이 확정된 뒤 매트를 내려온 조준호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정 훈 남자 유도대표팀 감독도 조준호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억울한 마음을 추스릴 겨를도 없었다. 경기가 끝나서야 약 한 달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식을 들은 그는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께 금메달을 따서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매트위에서 누구보다 치열했던 투사는 매트 밖에서 그저 마음 여린 아들이자 착한 손자였다.

런던올림픽 최대 오심사고의 희생양도 한국 선수였다. 신아람(26·계룡시청)은 1초 때문에 1시간 동안 피스트를 떠나지 못한채 눈물을 흘렸다. '멈춰선 1초'에 국민들은 격분했다. 신아람은 브리타 하이데만(독일)과의 여자 에페 개인전 4강전에서 마지막 1초를 남가고 세 번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네 번째 공격을 허용해 5대6으로 졌다. 네 번의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1초는 멈춰 있었다. 결승행 티켓까지 내준 그의 눈물은 AFP통신이 꼽은 '역대 올림픽 주요 판정 시비 5'의 한 꼭지를 차지했다. '신아람이 흘린 통한의 눈물'이라는 제목이었다. 그러나 조준호와 신아람과 외롭지 않았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동안 국민들도 함께 울었다.



아쉬움의 눈물

장미란(29·고양시청)과 박태환(23·SK텔레콤)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동기다. 두 선수는 절친하다. 런던에서 흘린 눈물도 동색이었다. 최선을 다한 후 쏟아낸 진한 눈물이었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강인한 그들이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건 단순히 금메달을 못 따서가 아니다. 2연패의 기대와 부담감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토할 만큼 힘들었던 훈련을 견뎌냈고 레이스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주변을 떠올렸다. "저희 전담팀 선생님들이 3년간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죄송하다."(박태환) "부족한 저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시고 성원해주셨는데 베이징때보다 부족한 기록을 보여드려서 아쉽고 죄송하다."(장미란) 박태환은 자유형 400m 결승에서 쑨양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이없는 실격과 유례없는 실격 번복은 고요한 리듬을 흔들어놓았다. 롤러코스터같은 하루를 보낸 후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인터뷰 내일 하면 안돼요?" 박태환은 힘든 하루를 떠올리다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장미란 역시 여자역도 75㎏ 이상급에서 5㎏ 차로 4위에 그친 직후 믹스트존에서 뒤돌아선 채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의 눈물에 취재진도 숙연해졌다. 박태환은 "금메달도 따지 못했고 세계기록도 세우지 못했지만 많은 추억을 남겨준, 가장 잊지 못할 올림픽"이라고 했다. 장미란은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어서, 운동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들의 땀과 눈물이 있어 17일 열전이 아름다웠다. 국민들은 행복했다. 4년을 기다릴 원동력을 얻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