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에 출전한 양학선선수가 금메달획득후 기뻐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작고 가무잡잡한 소년의 눈빛은 총총했다. 공중에서 1080도를 비틀어내린다고 했다. 무섭지 않느냐는 우문에 "뭐가 무서워요?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이해가 안돼요. 나는 재밌는데…"라며 싱긋 웃었다. 지난해 7월 고양 코리아컵 국제체조에서 난도 7.4, 세상에 없는 원천기술 YANGHAKSEON(양학선, 일명 '양1')을 처음 선보인 직후다. 세계 최강 토마 부엘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우승했다. "네가 하는 기술, 나도 할 줄 안다 속으로 그랬죠." 첫 만남에서 체조와 기술 이야기를 하는 내내 신명이 났다. 소년의 풋풋한 얼굴을 한 채 '괴물'같은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는 선수에게 훅 빨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소년에게 약속했다. "10월 도쿄 세계선수권 꼭 보러 갈게."
◇지난해 도쿄 세계선수권에서 만난 양학선은 카메라를 보자마자 V자를 그리며 활짝 웃어보였다.
◇올림픽 전초전으로 치러진 세계선수권에서 난도 7.4의 양1을 완벽하게 돌아내며 16.866점이라는 도마 사상 최고 점수를 찍었다. 런던 금메달의 예고편이었다.
10월 도쿄세계선수권, 런던 금메달 예고편
지난해 10월 세계선수권이 열린 도쿄돔, 전세계 수많은 취재진 속에 한국기자는 혼자였다. '강심장 소년' 양학선(20·한체대)은 당당히 도마 결선 무대에 올랐다. 당일 포디움 리허설을 하던 양학선과 눈이 마주쳤다.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며 환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떨거나 쫄지 않았다. 무대도, 시선도, 미디어도 즐기고 있었다. 눈앞에서 목도한 난도 7.4의 '양1'은 실로 대단했다. 빛의 속도로 달려 구름판을 딛고 훌쩍 날아올랐다. 전광석화처럼 3바퀴를 순식간에 돌아내더니 깔끔하게 매트에 두발을 꽂아냈다. 16.866점, 역대 도마 사상 최고 점수였다. 세상에 없던 기술을 보란듯이 성공한 후 손을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믹스트존에 몰려든 외국 취재진이 질문을 퍼부었다. 비범한 재능에 부모님이 혹시 선수 출신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우리 아버지는 농부(Farmer)"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런던올림픽 목표를 묻는 질문에 한국말로 "당연히 금메달이죠"하더니 "올림픽 골드메달! 골드메달!"을 외쳤다. 이 선수 '대박'이다.
양학선 비닐하우스 집.<사진=스포츠조선>
비닐하우스 집에서 만난 유쾌한 가족
올림픽이 임박한 7월 초, "복분자철이 거의 끝났으니 괜찮아, 놀러와요." 양학선의 어머니 기숙향씨가 흔쾌히 방문을 수락했다. 서울에서 4시간 거리인 전북 고창, 양학선이 자주 말하던 부모님과 비닐하우스 집을 직접 마주했다.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집은 미장공 출신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했다. 단칸방 하나, 부엌 하나, 아들의 금메달과 상패로 가득찬 테이블이 전부였다. 옹색한 살림살이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 양학선의 당당함은 집안 내력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들어서야 하는 비좁은 비닐하우스집에 사는 부모님은 유쾌했다. 최근 우울증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아버지도 아들 이야기엔 말이 빨라졌다. 방 한켠엔 약봉지가 수북했다. "부모님이 허리가 안좋으신데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속상하다"던 '효자' 양학선의 말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만 받고 있어, 올림픽 끝나고 큰병원 가봐야지." 응원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말에 어머니는 아들을 향한 애틋한 응원가를 불러주었다.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노라조의 '형'이라는 노래라고 했다. 구성진 응원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올림픽 한 달 전 양학선을 응원하던 아버지 양권관씨와 어머니 기숙향씨. <사진=전영지 기자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 깃털처럼 날다
7월 중순 런던 입성 후 양학선은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렸다. 태릉선수촌에 노메달로 돌아온 후 친한 동료와 형들이 등을 돌리는 악몽을 꿨다. 경기 2시간 전 불안해 하는 막내아들에게 어머니 기숙향씨는 전화로 "아들, 내가 좋은 꿈을 꿨으니 걱정말라"고 안심시켰다.
6일 결전의 날, 양학선은 아침 점심을 굶은 채 도마 결승 포디움에 섰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잘 먹지 않는 스타일이다. "부담감이 컸었는데 막상 손을 들고 달려가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잊었다. 도마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1차시기 자신의 이름을 딴 'YANGHAKSEON(양학선, 일명 양1)'을 올림픽 무대에서 선보였다. 실전에 강한 강심장이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순식간에 공중에서 3바퀴, 1080도를 비틀어내렸다. 착지가 두발짝 앞으로 나갔지만 세상에서 유일한, 독창적인 연기 '난도 7.4'에 대한 심판들의 점수는 후했다. 착지 실수에도 불구하고 16.466점, 최고 점수였다. 두번째 스카라트리플을 꽂는 순간 금메달을 확신했다. 군더더기 없는 '클린'이었다. 16.600점을 받았다. 광주체고 1학년때부터 수만번은 뛰어온 기술이지만, 실전에서 이처럼 완벽하게 꽂은 것은 2~3회에 불과하다고 했다. 스티브 버처 국제체조연맹(FIG) 심판위원은 "'스카라 트리플은 많은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해낸 경우는 처음 본다. 어메이징하다"고 극찬했다. 시상식 직전 믹스트존 근처에서 눈이 마주친 양학선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고 믿음만큼 해내준 '도마의 신'을 향해 두 엄지를 번쩍 치켜올렸다.
어머니 기씨가 길몽의 내용을 공개했다. 금메달을 예감한 예지몽이었다. "학선이가 금 은 동메달을 다 들고 와서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더라. 네것은 어디 있냐고 했더니 당당하게 '내것은 금메달이여'하더라"며 웃었다.
런던올림픽 남자 체조 도마에서 한국 남자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이 6일 오후(현지시각) 런던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결선 경기 1차 시기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다음 올림픽 위한 신기술 이미 준비중"
양학선의 시선은 이미 다음 올림픽을 향해 있다. "제 나이로 보면 앞으로 2번은 더 나갈 수 있거든요. 28살까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기존 '원천기술'을 업그레이드할 뜻도 밝혔다. 가칭 '양학선2'는 기존의 3바퀴 비틀어내리기에 또다시 반바퀴를 추가한 기술이다. 이미 연습에선 수차례 성공한 적이 있는 기술이다. "4년에 한번씩 올림픽 체조 규정이 바뀐다. 유럽쪽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비틀기 기술뿐 아니라 앞으로 두번 돌아 내리기, 뒤로 두번 돌아내리기 등도 개발할 생각"이라고 했다. 소년은 또다시 신기술 개발에 들어간다.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거침없는 청춘' 양학선이 올림픽 포디움을 앞두고 바꾼 메신저 대화명은 '양!학!선! 너의 용감함을 보여줘~'다.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의 패러디다. 진정한 용감함을 보여줬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