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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투혼의 김경아에게,너밖에 모르는 오빠가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08-05 02:16


◇대한민국 여자탁구 대표 김경아 남편 박명규씨

'여자탁구의 맏언니' 김경아(35·대한항공)가 마지막 올림픽에서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5일 새벽(한국시각) 여자단체전 8강에서 홍콩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남편 박명규씨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축제'를 위해 편지를 띄웠다. 박씨는 인천 정석항공과학고 체육선생님이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를 하다 운명같은 사랑을 만났다. 탁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빠져야 하는 김경아가 성실한 박씨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청하며 친해졌다. 해외 경기를 마치고 올 때면 작은 선물을 잊지 않는 씩씩하고 싹싹한 그녀와 어느새 사랑에 빠졌다. 결혼한 지 만으로 5년째지만 같이 산 기간은 채 반년이 되지 않는다. 한달에 2~3번 보는 것이 전부다.

부부는 서로가 안쓰럽고 애틋하다. 박씨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하는 아내가 존경스러우면서도 안타깝다. "1977년생으로 나오지만 사실 원래는 1976년생이에요, 우리나이로 37살이죠." 20대 어린 선수 못지 않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는 '독한' 아내가 이제 좀 편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다고 했다. 태릉선수촌으로 그녀를 데리러가고, 데려다주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김경아가 런던올림픽 출국 직전 인천공항에서 배웅 나온 남편 박명규씨와 나란히 서서 활짝 웃었다. .
주말에나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아내는 결혼하고도 혼자 살아야 하는 남편에게 늘 미안하다. 지옥훈련 속에 녹초가 된 몸으로 쓱싹쓱싹 방을 치운다. 가정을 꾸리고, 아기를 낳고 키우는, 그 나이대의 보통 가정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김경아는 심각하게 대표 은퇴를 고민했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서른다섯의 그녀는 대한민국 부동의 톱랭커다. 그녀가 필요했다. 런던올림픽, 결국 마지막 도전을 선택했다. 올시즌 놀라운 투혼으로 세계 랭킹이 5위까지 치솟았다. 김경아의 탁구는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남편 박씨는 그런 그녀를 온마음을 다해 지지하고 있다. 아내의 메달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즐겁게 올림픽을 즐기고 오기를, 언제나 그래왔듯 '김경아표' 투혼이 빛나는, 흥미진진한 경기를 보여주기를 믿고 바란다. '마지막 축제'를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띄웠다. 아래는 '김경아 남편' 박명규씨의 편지 전문이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사랑하는 그녀에게]

지금도 널 바래다주고 혼자 집으로 오는 길, 만으로 5년 이제는 적응이 될 법한 혼자만의 이 길이 꽤나 외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너의 운동선수로서의 일년 한달 단하루도 쉽게 지나버린 날들이 없었겠지

지난주 우연히 보게된 신문기사에 너의 트랙을 뛰며 운종하는 모습 가장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나조차도 너의 하루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에 며칠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매일 아침 일상을 혼자 맞이한다는 이유로 늦은 저녁 저녁상을 혼자 준비한다는 이유로 주말 밀린 빨래와 청소를 혼자 한다는 이유로 당장 함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30대 중반의 다른 친구들 가정과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너에 대해 판단하고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

앞으로 보름 남은 런던 올림픽

세번째 출전하는 올림픽, 37살의 나이, 여자선수 대표 등 모든 부담을 떨쳐버리고 기쁘고 즐겁게 즐기는 마음으로 모든 시합을 하고 왔으면 좋겠다 25여년 가까이 탁구라는 한종목에 매달려 온 너를 위한 마지막 축제 그리고 인생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즐거운 축제

고작 한달에 두세번 스치듯 보는 것이 우리 일상의 전부지만 세상의 다른 어떤 사람들의 결혼생활보다 우리의 날들이 행복하고 애틋하다는 것은 서로에게 말이 필요없겠지

사랑했고 많이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해

2012년 7월 늦은 저녁에 너밖에 모르는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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