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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메달을 포기했었다."
김재범은 1남 2녀의 막내로 부모님의 권유로 김천 서부초등학교 2학년 때 유도에 입문했다. 어머니 김씨는 처음에 아들을 유도 선수로 키울 생각이 없었다. 아들의 건강을 위해 잠깐 시키려던 운동이었는데 유도 입문 1년 만에 국내대회를 제패하는 것을 보고 만류하지 않았다. 오늘의 김재범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김재범은 김천 중앙중학교를 졸업한 뒤 유도명문인 포항 동지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실력이 향상됐다. 용인대를 거쳐 현재는 한국마사회에서 활약 중이다. 운동을 시작한 이래 수 많은 부상과의 싸움을 벌여 왔다. 평소 불평 한번 하지 않던 아들은 심한 부상과 싸울 때도 부모에게 내색하지 않았단다. 세상은 김재범을 '독종'이라하지만 부모님은 이 조차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다치고 와도 힘들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집에 오면 엄마 아빠한테 살갑게 대하는 아들이라 정말 손 댈거 하나 없이 순하게 컸다. 세상이 재범이를 독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줄도 몰랐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처음으로 아프다는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김재범은 2007년부터 습관성 왼어깨 탈구로 고생을 해왔다. 최근에는 왼쪽 팔꿈치와 왼무릎을 다친데 이어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일본 전지훈련에서 왼쪽 손가락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동안 통화하면 무조건 "괜찮다"고 답하던 김재범이 일본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왔다. "엄마, 나 너무 아파요. 왼쪽 손가락이 감각이 없어요."
마음을 비우게 됐다. 무사히 돌아와서 치료 받을 수 있기만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들이 '부상 투혼'을 발휘해 금메달을 따냈으니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김씨는 "우리는 몸이 안 좋다고 하길래 메달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이렇게 금메달을 딸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재범이가 메달 따서 엄마, 아빠 기쁘고 국민들 기쁘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김재범은 금메달은 딴 뒤 가장 먼저 부모님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가장 보고 싶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다 먹고 싶다." 전화를 통해 이 얘기를 들은 어머니 김씨는 옛 이야기를 꺼냈다. "재범이가 최근 몇년간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집에 내려온 적이 별로 없다. 가족끼리 식사를 한 게 손에 꼽지도 못할 정도다. 내 아들이라도 함부로 못본다."
그래도 아들은 1년에 한 두 번 먹는 어머니의 밥을 지금 가장 원하고 있었다. 김씨는 벌써 분주하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헤아려보니 딱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해주는건 다 잘먹어서 뭘 만들어줘야 할 지 떠오르지 않는다. 김치찌개도 잘먹고, 불고기도 좋아하고 조림음식을 잘 먹는데…." 김씨는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만 하고 있다. "재범이 누나랑 다 같이 가족끼리 도란도란 모여 앉아 식사하고 싶다. 재범아 사랑한다. 빨리 온나."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