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쌓아놓은 아성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전날 여자복식 조별예선에서 이른바 '져주기' 파문이 발생한데 이어 관련 선수들의 무더기 실격 사태로 번졌기 때문이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배드민턴 여자복식 조별예선 최종전에서 일어난 '져주기' 경기 의혹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관련 선수 4개팀 8명의 선수를 실격 조치했다.
이번 사건은 왕샤올리-위양조가 정경은-김하나조와의 A조 최종전에서 조 2위로 조별예선을 통과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져주기 경기를 하면서 불거졌다. 왕샤올리-위양조는 정경은-김하나와 마찬가지로 8강행을 조기에 확정했지만 4강전에서 같은 중국조를 만나지 않기 위해 조 1위를 피하려고 했다.
이어 벌어진 하정은-김민정조와 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시아 폴리조의 C조 최종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지고 현지 여론이 악화되자 BWF가 강경책을 빼들게 된 것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한국은 중국이 먼저 노골적으로 져주기 플레이를 한 것에 대응해 항의표시를 한 것이 같은 져주기로 몰려 억울하다"며 즉각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여자복식은 나머지 4강끼리 맞붙는 상황을 연출하게 됐다. 실격 판정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 모두 손실이 적지 않다. 특히 중국의 왕샤올리-위양조는 부동의 세계 1위로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중국은 티안칭-자오윤레이(세계 2위)조가 살아 남았기 때문에 금메달 희망은 남아있다.
한국의 경우 하정은-김민정조 정도가 메달권에 들어갈 것으로 기대를 했기 때문에 중국보다 직접적인 손실은 덜하다. 하지만 한국은 8강에 진출시킨 2개조를 모두 잃었기 때문에 노메달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은 이번 사태를 통해 메달만 잃은 게 아니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페어플레이 올림픽 정신을 잃었고,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한국 배드민턴은 성적(메달)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이번 사태는 미리 피해나갈 여지가 있었다. 당초 문제가 된 왕샤올리-위양조와 정경은-김하나조의 경기는 1일 새벽 3시쯤 시작됐다. 두 번째 문제가 된 김민정-하정은의 경기는 새벽 4시 19분이었다.
정경은-김하나조의 경기에서 문제가 크게 벌어졌다. 중국의 노골적인 '져주기'에 관중의 야유가 극에 달했고, 심판이 이례적으로 경고를 주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경기는 홍역을 치렀다.
심판의 경고가 나올 정도였으면 한국은 대응책을 수립해야 했다. 이어 벌어진 경기에서 김민정-하정은의 상대가 중국이 아닌 상대적 약체 인도네시아인 만큼 '져주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피해야 했다. 바로 직전에 중국의 '져주기'로 난리를 치렀으니 더욱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은 강적 중국을 피해서 안정적인 메달권에 진입해야 겠다는 생각에 치우친 나머지 올림픽 무대에서 숭고하게 챙겨야 할 가치를 망각한 것이다.
배드민턴 관계자들이 "성적으로 인한 현장의 부담감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 최대 스포츠 축전에서 비신사적인 국가로 낙인받지 않으려면 좀더 슬기롭게 대처했어야 한다"고 개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