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리아'의 탁구인 시사회가 예정된 24일 저녁 7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극장 주변이 삼삼오오 모여든 탁구인들로 북적댔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탁구 단일팀이 1991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 '코리아'의 이름으로 정상에 섰던 그날의 환희와 눈물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 남북단일팀 멤버였던 유남규 강희찬 남녀 대표팀 전임감독, 박지현 전 예멘대표팀 감독, 김택수 대우증권 총감독, 추교성 농심삼다수 감독, 이철승 삼성생명 코치 등이 속속 도착했다. 오상은 유승민 김민석 정영식 서효원 석하정 등 후배선수들도 오후 훈련을 마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왔다. '탁구인의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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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전무의 탁구인을 향한 인사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됐다. 지바세계선수권 탁구경기 장면이 시작되자 선수들이 몰입했다. 선수들은 곳곳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동료 선수들의 모습에 폭소했다. 일본선수로 출연한 김숭실 한국마사회 코치와 김민희가 스타트를 끊었다. 김 코치의 드라이브 공격에 "우와"하는 탄성이 쏟아지더니 패배 후 낙담한 표정을 짓는 김민희의 연기엔 선수들은 "오~! 민희~"라며 장난기 섞인 괴성을 질렀다. 중국선수로 분한 박차라(한국마사회)의 매서운 눈빛 연기에 객석에선 웃음이 '빵' 터졌다. 남자대표팀의 맏형 오상은의 "와~ 차라 연기 잘하는데!"라는 말에 웃음이 쏟아졌다.
영화 후반부 중국과의 결승전이 시작되며 웃음바다는 눈물바다로 바뀌었다. 중국을 꺾고 오열하듯 환호하는 배두나(리분희)-하지원(현정화)의 세리머니에 객석 곳곳에서 훌쩍임이 시작되더니 '버스 이별신' 장면에서 눈물은 절정에 달했다. 불이 들어오자 너나 할것없이 선수들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었다. '현정화의 얼짱 제자' 서효원(한국마사회)이 빨개진 눈으로 "너무 많이 울었다. 생갭다 더 슬펐다. 현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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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 한예리, 최윤영 등 주연배우들이 탁구인들과의 뒤풀이 자리에 동석했다. 배우들은 탁구인들의 시사회에 전에 없이 긴장했다. 수개월간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그럭저럭 선수 흉내는 냈지만 '프로선수'들의 냉정한 평가가 궁금했다. 현정화 전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배두나의 커다란 눈망울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북녘땅 왼손 에이스' 리분희에 대해 '도도하다' '차분하다'는 말을 들었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고,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배두나는 외롭고 힘들었다. '대한민국 에이스' 현정화를 '친언니' 삼아 직접 보고 배우는 하지원이 부러울 때도 있었을 터. 그만큼 더 치열하게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스타일과 영화 속 느낌이 리분희와 닮았다"는 탁구인들의 일관된 찬사에 "정말요?"하더니 또다시 눈물을 매단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컸다. "정말 이기고 싶었어요"라는 그녀는 여전히 코리아의 '리분희'였다.
이날 뒤풀이에는 '역사속의 그녀' 홍차옥이 모처럼 자리했다. 여자단일팀(현정화, 최연정, 리분희, 유순복) 가운데 유일하게 가명으로 나오는 '최연정'이 실은 '홍차옥'이다. "내가 보수적이어서 그랬는지 (사실이 아닌) 극중 러브라인도 있고 어쩐지 부담스럽고 해서 본명을 빼달라고 했다"며 웃었다. 홍차옥은 현정화와 함께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여자복식 금메달, 1991년 지바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동메달 이후 현정화와 함께 은퇴했다. 유도대표팀 주장 출신 양종옥씨와 결혼해 슬하에 세 아이를 뒀다. 가사에 전념하느라 잠시 탁구계를 떠나 있었지만 탁구를 향한 열정은 변함없었다. 영화를 보고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일본에서 순복이랑 같이 백화점 가서 내가 직접 옷을 사준 기억이 난다. 순복이는 정말 말이 없고 참했었는데, 배우(한예리)가 연기를 참 잘했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 테이블을 돌던 '최연정'역의 배우 최윤영이 '실존인물' 홍차옥을 보고 반색했다. "아! 정말 뵙고 싶었어요"라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그날의 홍차옥'과 '영화 속 홍차옥'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닮았다"는 말에 배우도 선수도 활짝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