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학교체육이 희망이다]범태평양 킨볼대회, 한국 킨볼의 무한도전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1-11-21 15:43


◇"옴니킨, 그레이!"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범태평양킨볼대회에서 캐나다 선수들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의 배경규(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수비 위치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킨볼협회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들 했다. 학교 체육시간 우연히 접한 '킨볼'로 일본 오사카까지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난 11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엔 쪽빛 유니폼을 일사불란하게 맞춰입은 소년들이 도열했다. 지난 9월 제4회 코리아컵 킨볼대회 남자부 우승팀 광양 백운고(노준용 송민수 조은제 장범구)와 준우승팀 백석대 특수교육학과(백승우 김도우 류강래 배경규)팀이다. 오사카 인근 소도시 다카라즈카시에서 열리는 제1회 범태평양 국제 킨볼대회를 위해 다시 뭉쳤다. 고등학교 1학년인 백운고 팀도, 이제 막 군대를 마치고 복학한 백석대 팀도 일본은 난생 처음이다. 킨볼 종주국인 세계 최강 캐나다,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일본,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중국과 한국 등 범태평양 4개국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옴니킨!"을 외치게 됐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대한민국 청춘들의 킨볼 무한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11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 집결한 킨볼 선수들이 오사카로 출국하기 직전 출정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킨볼협회
"저희 킨볼 국가대표예요"

뉴스포츠 소개와 보급에 앞장서 온 정기채 광양 중마고 선생님은 10일 밤 전남 광양에서 들뜬 표정의 아이들을 마주쳤다. "니네 어디 가니?"라는 질문에 백운고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답했다. "일본 오사카 가요, 저희 킨볼 국가대표예요." 의기양양했다. 이웃학교 정 선생님이 이번 대회의 단장이라는 사실을 지도교사인 성두별 선생님이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아이들은 밤 12시 전남 광양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 4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탑승수속이 시작된 7시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지난 9월 코리아컵 결승에서 우승을 다퉜던 '라이벌' 백석대 형님팀과 함께 파이팅을 외친 후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들의 도전에 한국데쌍트에서 르꼬끄스포르티브 유니폼 등 1000만원 상당의 물품 후원을 자청했다.


◇백석대 특수교육학과 킨볼 4총사가 오사카 도착 직후 실전 연습에 나섰다. 왼쪽부터 배경규 김도우 백승우 류강래 .
여독도 잊은 채 체육관서 "옴니킨!"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숙소를 향하는 전철 안, 백운고 아이들은 처음 만난 일본의 창밖 풍경을 보며 조잘대더니 어느덧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연습을 위해 대회가 열릴 다카라즈카 시립체육관으로 직행했다. 여독도 잊은 채 "옴니킨!"을 외치는 모습에선 활기가 살아났다. 이승주 한국킨볼협회 이사 겸 감독은 리시브 때 필요한 슬라이딩 기술을 계속 주문했다. "빨라서 손으로는 못 받아. 무조건 슬라이딩해야 돼!" 백석대의 장점인 속공과 시간차를 활용한 작전도 1~5번까지 준비했다. 옆 코트에서 연습하던 중국 연변대학교팀 주장이 "안녕하세요"라며 능숙한 한국어 인사를 건넸다. 우리와 실력이 비슷한, 반드시 이겨야할 라이벌이다.


◇13일 일본 다카라즈카 시립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범태평양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든 채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한국 선수단.  사진제공=한국킨볼협회
개막식날 부른 애국가 가슴 뭉클

13일 오전 11시 드디어 범태평양 킨볼 대회의 막이 올랐다. 개막식에서 한-중-일- 캐나다 4개국이 각나라의 국기를 들어올렸다.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는 내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개최국인 일본은 국가대표팀과 전일본대회 우승팀 2팀이 출전했다. 5경기를 치른 후 1-2-3위팀이 결승에 진출한다. 첫 경기인 한-중-일전은 비장했다. 7분 1세트 경기에 사활을 걸었다.백석대 형님들이 나섰다. 일본의 조직력은 강력했다. 긴장한 탓일까, 백석대 류강래군이 갑자기 오른팔 통증을 호소했다. 백운고 에이스 정범구가 긴급투입됐다. 국내 대회에서 모두를 물리친 'MVP 범구'의 파워풀한 서브를 일본도 중국도 거뜬히 받아냈다. 준비한 1~5번 작전도 먹히지 않았다. 일본이 1위, 한국과 중국은 비긴 채 경기를 마쳤다. "너무 빨라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첫 소감이었다.


◇캐나다, 일본과의 경기 시작 직전 활짝 웃고 있는 전남 광양 백운고 선수들. 왼쪽부터 송민수 조은제 노준용 정범구. 나란히 선 세계 최강 캐나다 선수와 키와 몸집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킨볼 무한도전 '다윗과 골리앗'의 맞대결

세번째 경기, '그레이' 캐나다-'블랙' 일본-'핑크' 한국이 맞붙었다. 이번엔 동생팀 백운고가 나섰다. 캐나다의 발육 좋은 청년들과 나란히 선 한국 고등학생들은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이었다. 세계 최강 캐나다와 일본 사이에 낀 한국은 볼 터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레이'는 '블랙'을 외쳤고, '블랙'은 '그레이'를 외쳤다. '핑크' 한국은 '그레이'와 '블랙' 사이에서 '어부지리' 점수만 챙겼다. 공격은 빠르고 강했고, 수비는 난공불락이었다. 특히 슬라이딩의 수준이 한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방향을 잡고 발을 뻗는 순간 이미 공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대학생 형들을 누른 '한국 챔피언'으로 의기양양했던 백석고 아이들은 말을 잃었다. 노준용군(16)은 "우리보다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붙어보니…"라며 고개를 떨궜다.


◇대회 직후 야외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코리아 킨볼팀 파이팅'이라고 씌어진 걸개를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패기 넘치는 '코리안 보이'들은 4개국 선수단 사이에서 인기 높았다. 경기 직후 여자선수단의 사진 촬영 요청이 쇄도했다. 백운고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캐나다 여자 대표들.

◇킨볼이란 이름 아래 함께 땀을 흘린 청춘은 모두 친구가 됐다. 경기 직후 우승국 캐나다팀과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한국 선수단.

킨볼은 국경을 넘은 우정을 선물했다. 일본여자선수들과 함께 깜찍한 포즈를 취한 한국선수단.

◇여자부 MVP를 수상한 캐나다 여자대표팀의 마틸다 블랑셰트(왼쪽)는 경기 직후 백석대 배경규 선수에게 유니폼 교환을 제의했다. 유니폼 교환 후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백석대 주장 백승우 선수(왼쪽)와 백운고 송민수 선수가 팀스피리트상 수상 후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범태평양 킨볼 대회에서 팀스피리트상을 수상한 한국 선수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우승국 캐나다 선수들이 가세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한국킨볼협회
세계의 벽 , 그러나 킨볼의 희망을 보다

킨볼의 창시자인 마리오 뒤마는 캐나다 출신이다. 퀘벡주에만 8000여명의 동호인이 킨볼을 즐긴다. 초등학교 때부터 킨볼을 접하는 이들은 볼터치부터 달랐다. 애드벌룬만한 공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몸이 먼저 알고 반응했다. 일본에도 오사카를 중심으로 1000여명의 동호인이 킨볼협회에 가입돼 있다. 학교체육의 저변 자체가 한국과 다르다. 백운고 학생들은 킨볼을 배운 지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았다. 백석대 학생들도 지난 9월 수업시간에 킨볼을 처음 접했다. 10년 넘게 킨볼을 해온 선수들과 맞붙었다. 예상대로 캐나다가 1위, 일본 대표팀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4위에 오르며 중국을 앞섰지만 결승 진출엔 실패했다. 한국은 팀스피리트상, 중국은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우물안 개구리' 한국 킨볼이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백석대 주장 백승우군(23)은 "진짜 많이 배웠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때 축구선수들이 우리같았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일주일에 2번은 모여서 연습하자" "일본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 "학교에 킨볼 클럽을 만들자." 경기 직후 시무룩했던 선수들은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킨볼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뭘 준비해야 할지 알겠어요. 1년 열심히 연습하면 내년엔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운고 송민수군(16)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협동, 존중, 참여라는 킨볼의 3대 정신에 '도전' 두글자가 추가됐다.
오사카(일본)=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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