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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발목 부상을 딛고 웃으며 백일루션 9번을 돌아냈다. 올해 1월 발목 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다. 3개월만인 4월 매트에 복귀했다. 빠른 재활을 위해 매일 400m 트랙 50바퀴를 탈진할 때까지 돌았다. 수술 부위가 터지고, 고름이 흘러나왔다. 항생제를 맞으며 독하게 버텼다. 6월, 손녀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연재와 라이벌? 남 의식할 시간 없어요. 라이벌은 제 자신이죠."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 12위의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던 '한국 리듬체조계의 원조요정' 신수지(20·세종대)는 지금 자신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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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녀가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4달 넘게 리본을 손에서 놓았다. 처음이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은 리듬체조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발목 인대가 끊어진 상태로 대회를 준비했다.
"최악이었다. 발이 돌아가버려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난도도 안됐다. 준비하는 6개월 내내 하루도 안빼고 울었다." 동메달을 목표로 한 단체전에서 '언니' 신수지가 해줘야 할 몫과 기대치만큼 해낼 수 없었다.
결국 3위 일본에 0.6점 차로 밀리며 동메달을 놓쳤다. 1월 수술대에 오른 신수지는 그토록 좋아했던 리듬체조를 그만둘 마음을 먹었다.
"수술하고 나서 너무 아팠다. 새벽 3시반까지 참다가 진통제 맞고 겨우 잠들고, 다음날 아침 위경련 나고…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 더 이상 내 몸 아프게 안해야지 했다."
하지만 한달만에 다시 리듬체조가 그녀를 찾아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마무리가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자신이 가는 길이 한국 리듬체조의 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요즘 대세라는 '동생' 손연재(17·세종고)는 어쩌면 '언니' 신수지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러시아, 크로아티아 전훈도, 전담 코치 선생님도 똑같다.
손연재를 통해 예브게니아 카나예바(러시아·세계랭킹 1위)가 "수지는 어디 갔냐, 혹시 그만 뒀냐"며 안부를 물어온단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다시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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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이징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선수니까."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 신수지를 붙드는 건 역시 베이징올림픽의 추억이다. 마지막 연기를 마치고 뒤돌아 나갈 때 짜릿한 전율, 그날 관중석의 기립박수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매트에 돌아온 가장 큰 이유다. 재활의 길은 쉽지 않았다. 무리한 재활로 수술 부위가 터지고, 발목은 퉁퉁 부어올랐다. 아픈 발목은 마음까지 위축시켰다. 11년간 잡아왔던 수구(후프 볼 곤봉 리본)를 던지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지난 6월 회장배 직후 신수지는 '피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자신의 피를 빼서 다시 주입하는 자가혈(PRP) 주사다. 인대 생성에 효과적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맞아본 주사 중에 제일 아프다. 맞는 순간 '억'하고 숨이 안쉬어질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아프지만 다행히 효능이 있었다. "발목이 한결 편안해졌다"며 웃는다.
신수지는 '3년 후배' 손연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연재는 귀엽다. 내게 요령도 많이 물어보고…. 후배로서 같이 훈련하면 서로에게 힘이 된다"고 했다.
후배가 훌쩍 자라 자신이 누렸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이 마음 쓰이지는 않을까. '언니' 신수지의 대답은 짧고도 단호했다.
"라이벌이라고 하는데 난 남 의식할 시간이 없다. 라이벌이라고 한다면 내 자신이다. 예전의 모습을 찾아야 하니까." 신수지의 마음속 경쟁자는 베이징에서 리듬체조에 미친 듯 몰입하며 한국 리듬체조의 새 역사를 열었던 3년 전의 자신이다.
신수지는 요즘 매일 밤 집 근처 성래천에서 올림픽공원까지 2시간씩 뛰고 걷는다. 병원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난생 처음으로 원없이 먹었다. 늘어난 살은 빼고, 떨어진 근력은 끌어올려야 한다. 예전의 모습과 기량을 찾아가고 있다.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17일 출국한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9월 몽펠리에세계선수권, 최종 목표는 런던올림픽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