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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육상]'겁 상실' 정순옥 '대구세계육상, 포기란 없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1-08-15 08:12 | 최종수정 2011-08-15 11:09


육상 여자 멀리뛰기 정순옥

한국 여자 멀리뛰기의 간판 정순옥(28·안동시청)에게 2009년과 2010년은 화려한 시기였다. 2009년 6m76을 뛰며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2010년에는 6m53으로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 때를 정점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더 이상 욕심이 없어졌다. 올 시즌 고질적인 오른발목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기록도 잘 안나오기 시작했다. 올 시즌 최고 기록은 7월 일본 고베에서 열린 2011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의 6m12에 불과하다.

세계와의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여자 멀리뛰기 세계신기록인 7m52(갈리나 치스트야코바·러시아·1988년)에는 1m 가까이 차이가 난다. 올 시즌 최고 기록인 7m19(브리트니 리스·미국)와도 격차가 크다. 기록상으로 봤을 때 이번 2011년 대구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순옥은 메달 획득이 아니라 결선 진출만 하더라도 성공한 셈이다. 이대로라면 '참가하는데 의의'를 둘 수도 있다. 정순옥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포기란 없다. 포기한 채 출발선에 서는 선수는 없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한 번 붙어보고 나서 판단하자. 미리 졌다고 생각하지 말자'라는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었다. 막내 동생 뻘인 박태환(22·단국대)이 2011년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한 말이다. 대구대회를 준비하면서 박태환의 말을 듣고 크게 깨우쳤다. 그동안 아시아 무대만 목표로 삼고 운동해왔던 자기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부상 악화로 방황한 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자신감을 가지기로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설 셈이다. 정순옥은 "겁먹지 않고 이번 대회를 즐기겠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움츠러들지 않고 제 마당이라고 생각하고 뛸 것이다"고 다짐했다.

이번 대회 목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국신기록을 새로 쓰는 것이다.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한만큼 피나는 훈련에 매진해왔다. 뛰고 또 뛰었다. 평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수만번 반복해온 훈련 방식을 고수했다. 남들은 너무 고집스러운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고집으로 여기까지 왔다. 남은 기간도 자신을 믿고 맡기기로 했다. 대구 대회를 10여일 앞둔 현재는 스피드 훈련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도움닫기 구간에서 스피드가 붙어야 좀 더 멀리 뛸 수 있다. 27일 예선과 28일 결선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스피드 보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육상 여자 멀리뛰기 정순옥
멀리뛰기는 훈련의 강도가 그대로 결과로 드러난다. 2009년 6월 대구국제육상대회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웠을 때가 그랬다. 이전까지 피나는 훈련을 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그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고생 끝에 낙이 있을 거라 믿었다. 대회 당일 몸이 먼저 반응했다. 워밍업을 할 때 몸상태가 너무 좋았다. 에너지가 넘쳤다. 스스로 '오늘 일내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점프할 때 공중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한 방 걸렸다'는 느낌이었다. 프로 엘리트 선수들이 느끼는 하나의 '존(Zone)'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훈련의 정직함을 믿게 됐다.

부상에 대한 태도도 바꾸었다. '발목이 아프지 않았다면 다른 곳이 아팠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부상 자체도 오래된데다 아프다는 것에 집착한다면 결과도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 대회를 앞두고 통증도 사라졌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점프하기 전 어떻게 해야겠다는 절차를 한 번 머리 속으로 훑을 뿐이다. 메달을 따고, 기록은 내겠다는 생각을 버린다. 물론 욕심 하나는 마음 속에 남겨놓기로 했다. 자기 자신이 뛸 수 있는 최대한도로 뛰겠다는 욕심이다.

관중들의 힘도 필요하다. 정순옥은 "선수가 아무리 즐긴다고 마음 먹더라도 팬들이 지켜보기만 한다면 서로 호흡할 수 없다. 팬들도 즐겨주었으면 한다. 누구나 즐기는 응원이 선수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이번 대회를 메달과 기록을 위한 싸움의 장이 아니라 재미있는 축제라고 생각하면 응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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