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중단까지 권고받았던 말기 간경변 환자가 뇌사자 간이식을 받은 후 지난 24일 건강하게 퇴원했다.
가족들의 상의 끝에 김 씨의 아들이 생체 간이식 기증을 위해 검사를 받았으나, 간에 큰 혈관종이 있고 해부학적 구조가 좋지 않아 아버지에게 간을 떼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아버지도 이식을 받지 못하고, 약물치료 등 계속 보존적 치료를 받아 왔다.
설상가상으로 1년 뒤, 김민철 씨는 간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고주파 치료를 통해 재발 우려를 없앴으나, 간 기능은 회복되지 못했다. 몸에 복수가 차고, 간 기능이 저하되어 생기는 의식 상실 상태인 '간성 혼수'가 반복됐다.
아들 김씨는 "당장 내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더라도, 아버지를 꼭 살리고 싶어, 좀 더 큰 병원에 아버지를 치료해 달라고 요청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환자 김씨는 병원 간 의료진의 협력으로 3월 18일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로 전원됐다. 전원 당시 기관삽관 및 인공호흡기 뿐만 아니라 지속적 신장투석을 받는 상태에 쇼크까지 있어 승압제를 달고 있는 상태였다. 간이식대기자 응급도 평가(MELD)에서는 40점으로 최고 응급 단계에 속했다.
다행히 다음날 19일 바로 뇌사자 간이식 수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6시간의 수술 도중 생사를 오가는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수술이 잘 마무리됐다. 수술 후 간기능 뿐만 아니라 신장기능도 회복돼 지속적 신장투석기를 제거하고 빠른 회복을 보였다.
그러나, 수술 후 4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으나, 이식수술 받기 전 장기간의 전신상태 악화 및 호흡근을 포함한 근육의 소실로 5일째 되던 날 다시 기관삽관 및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게 됐다.
수술 후 13일째 투석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병실에 올라와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됐지만, 다음 날 또 호흡이 약해져 결국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가 기관절개술을 받았다.
이후 의료진은 김씨 치료를 먹을 수 있게 하고,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전인적 치료로 바꿨다.
이재근 교수는 당시 상황을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것이었다. 영양상태 공급 및 재활 치료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전했다.
죽음의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폐렴과 패혈증이 다시 진행된 것이다. 이동용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지냈다.
일반병실에 올라와 점차 전신상태가 좋아졌으나, 먹는 부분에 문제가 발생했다. 음식을 먹으면 반복적으로 역류와 사레가 들리면서 폐렴이 또 발생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내시경적 보톡스 시술도 어려원 상황이라, 경피적위루를 만들어 영양공급을 충분하게 했다. 두 달간의 재활 과정을 거쳐, 내시경적 보톡스 시술을 했고,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 전인적 치료의 한 계단을 올라간 셈이었다.
다음 계단은 김씨를 걷게 하는 것이었다. 김씨는 척추관협착증으로 인한 허리 통증으로 병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걷지를 못하니 보행은 물론 재활에 속도가 나질 않았다. 이는 혈소판 감소로 이어져, 허리치료를 위한 시술이 불가능했다.
이에 이재근 교수팀은 비장동맥색전술을 시행해 혈소판을 10배 정도 증가시켜, 허리치료를 위한 신경차단술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몇 개월 동안 누워 있던 김씨가 드디어 보행할 수 있게 됐다.
김씨 가족은 퇴원을 앞두고 "더는 가능성이 없다고 연명치료중단서를 작성하자고 할 때 너무 앞이 깜깜했다. 세브란스병원으로 와서 간이식을 받고 투석도 안 하고, 입으로 음식도 먹고 걸어서 퇴원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식수술 후 5개월간 전인적 치료를 담당한 이식외과 이재근 교수는 "환자와 가족이 포기하고픈 순간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며 "중증 환자 간이식을 통해 살렸던 다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히 좋아질 수 있는 환자도 있다"며 전했다.
이재근 교수는 "간이식하고 간수치의 정상화가 끝이 아닌, 생사의 문턱에서 모든 장기와 근육이 망가졌을 때 전인적인 치료와 완벽한 재활이 꼭 필요하다"며 "환자의 인생을 바꾸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
재테크 잘하려면? 무료로 보는 금전 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