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일기] 말라리아보다 무서운 '만만디 근성'
기사입력 1999년 04월 18일 14시 16분
99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무슨 세계대회를 치르느냐'는 비난속에 썰렁하게 시작된 대회가 16강, 8강전을 거칠수록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조별 예선 때 발생했던 정전사고의 충격, 선수들을 아연실색케 했던 호텔의 흙탕물도 어느덧 그 열기속에 모두 녹아버렸다.
이제 거리의 '검은 풍경'도, 작렬하는 태양까지도 포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느새 아프리카에 정이 들었나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까지도 나이지리아는 모두에게 '죽음의 땅'이었다.
모기한테 물리면 저승간다느니, 무장강도가 들끓어 낮에도 외출이 불가능하다느니….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각 대륙을 긴장시켰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유럽의 몇몇 나라 프로팀들이 자기 선수를 대표로 내줄 수 없다며 버텼고, 각종 국제대회 때마다 최소한 1∼2개 중대병력 규모로 움직이던 일본 보도진이 겨우 12명밖에 오지 않았을까.
필자 또한 처자의 사진까지 챙기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검은 대륙'이 큰 오해를 받고 있었다는 걸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물론 각종 풍토병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 무장 떼강도가 고속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수 백대의 차들을 한꺼번에 턴 적도 있다.
하지만 사람 죽지 않는 나라 어디 있으며 강도 없는 나라 또한 어디 있을까.
선입관이란 참으로 무서웠다.
무장강도 얘기를 잔뜩 듣고 왔더니 하다못해 자전거에다 요구르트를 싣고 팔러다니는 꾀죄죄한 아저씨들조차도 다 도둑놈으로 보였고, '물리면 간다'는 생각에 모기 그림자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라고스에서 만난 교민들이 웃었다.
"여기도 사람 사는 뎁니다. 누가 그렇게 겁을 줍디까?"
한데 이곳엔 모기보다, 강도보다 더 무서운 게 하나 있다.
사람들의 무책임성과 만만디 근성이다.
자기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르며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너나없이 '세월아 네월아'다.
뭐 한가지 부탁하면 "금방 해줄게"하고 흔쾌히 대답한다.
조금 있다 가면 1시간 후에 오란다.
1시간 후에 가면 "내일보자"고 한다.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여야 겨우 움직이는 시늉을 한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져봐야 소용없다.
그들의 대답은 뻔하다.
"THIS IS NIGERIA."
나이지리아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비단 아프리카라는 열악한 환경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라고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