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역사교수 꿈꾸는 '유행가 박사'
기사입력 1999년 01월 21일 15시 11분
"`타향살이'의 원제목은 `타향'이고, `황성 옛터'의 원제목은 `황성의 적(跡)'이죠. 흘러간 가요 가운데 제목이 틀린 게 많아요."
서울대 중문과 3학년 이준희씨(27)는 `유행가 박사'다.
그는 해방 무렵까지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유행가'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틈만 나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도서관은 물론 국회 도서관까지 찾아다니며 `유행가사(史)'의 올바른 정리를 위해 해묵은 신문과 잡지를 뒤진다.
"얼마전 김정구씨가 돌아가셨을 때 대부분의 신문에서 실은 약력이 틀렸어요. 김정구씨는 36년 뉴코리아 레코드라는 작은 음반회사에서 데뷔한 뒤 37년 당시로는 큰 OK레코드로 옮겼는데 거의 33년 데뷔로 썼더군요. 원로가수들 관련기사를 보면 한, 두군데는 꼭 틀려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중문과에 학사편입한 이씨의 `연구'는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
"왠지 옛 노래가 좋더라구요. 그래서 고등학교(서울 대원외국어고)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죠."
대입시험이 발등에 떨어진 수험생이었던 이씨는 자율학습 때문에 라디오의 가요 프로그램을 듣지 못하게 되자 어머니 백옥자씨(54)에게 녹음을 날마다 부탁하기도 했다.
이씨의 유행가 연구는 대학 입학 후 더욱 탄력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마이크로 필름에 담긴 해방전 신문과 `삼천리' 등 잡지를 읽었다.
"`황성 옛터'가 식민지시대에 금지가요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36∼36년 사이 발간된 삼천리에는 당시의 금지곡이 나오는데 어디에도 `황성 옛터'는 없죠."
`유행가'를 좋아하는 이씨인 만큼 신입생 환영회나 MT 때도 유행가만 부른다.
"92년 MT에 갔다가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뉴스를 들었어요. 그날 레퍼토리는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유행했던 최규엽이라는 월북가수의 `마라손 제패가'였죠."
이씨는 한때 서울 황학동 등 벼룩시장을 헤매며 옛날 음반을 구하려고 했지만 남인수의 노래 두곡이 담긴 SP판이 10만원이나 하는 것을 보고 `문헌 연구'에 만족하기로 했다고 한다.
"많은 소장가들이 판을 내놓지 않더라도 가수와 노래 제목만이라도 공개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양사학과 교수가 꿈인 이씨는 `한국 유행가사'를 쓰는 것도 평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승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