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명물] 게릴라앞에서 태권도 시범 역마살덩어리
기사입력 1998년 04월 29일 14시 34분
`역마살（驛馬煞） 덩어리.'
한양대에 가서 `역마살 낀 녀석'을 찾으면 다 안다.
체육학과 4학년 손시원（22）.
어떻게 된 게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한다.
여행도중 여러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여전히 엉덩이가 가볍다.
"아버지가 여행광입니다. 그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지난 96년 국내여행을 끝낸 손군은 작년 5월 배낭하나 달랑 메고 또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세계일주였다.
여비는 딱 300만원.
중국을 시작으로 몽고와 러시아, 동구, 터키에 이어 중동까지 샅샅이 훑었다.
손군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입성한 것은 10월이었다.
그런데 비교적 순탄하던 여행이 여기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케냐로 넘어가는 국경 산간마을에서 원주민을 향해 셔터를 누른 게 화근이었다.
사진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여기는 그들이 "죽이겠다"며 창으로 숨통을 겨눴던 것.
"트럭 운전수가 나서지 않았으면 정말 끝장났을 겁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손군. 이번에는 국경에서 난데없는 집중사격을 받았다.
반정부군이었다.
다른 승객들이 마구 구타를 당하고 있을 때 한 녀석이 손군에게 총을 들이댔다.
"국적을 묻길래 코리아라고 했더니 대뜸 태권도를 해보라고 하더군요. 태극 7장을 보여줬더니 박수를 치며 풀어주더라구요."
그러는 동안 이가 옮아 온몸의 털이란 털은 다 깎는 `큰일'도 치렀다.
케냐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길가에서 용변보다가 하이애나에게 걸려 혼쭐이 났다.
"소변을 봤는지 지퍼를 올렸는지 신경쓸 겨를도 없이 줄행랑을 놨죠."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긴 손군은 탄자니아에서 끝내 백기를 들고 말았다.
풍토병에 걸린 것이다.
아무도 병명을 몰랐다.
그저 뱃속에 아메바균이 가득찼다는 얘기만 들었다.
결국 여행을 포기, 이모（46）가 사는 미국 시애틀로 날아가 치료를 받고 귀국했다.
그 때가 12월22일.
손군은 요즘 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풍토병으로 중단된 여행을 매듭짓고 싶어서다.
"조만간 배낭을 꾸릴 겁니다. 이번에는 남미와 오세아니압니다."
[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