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사랑과 예술 형상화
기사입력 1997년 05월 21일 14시 35분
독일에 살면서 닥종이 인형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희씨(53)가 장편소설 `발끝에서 손끝까지'(시공사)를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김씨가 15년간 독일에서 살면서 느끼고 체험한 사랑과 삶, 예술에 대한 생각들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
닥종이 인형작가로 국제적 명성을 누리면서 이미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등의 에세이집으로 특유의 글맛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온 김씨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과 예술을 이야기해준다.
여자의 심리와 사랑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가 흥미롭고, 현대미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뮌헨시립미술관 초대전에 초대된 한국의 여류예술가 지연희는 전시회장 정원에서 롤란드라는 연하의 청년을 만나 숲속으로 들어가 정사를 나눈 뒤 그를 따라 이탈리아로 사랑여행을 떠난다.
미술관장은 한국의 여류 예술가가 실종된 것으로 생각해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1주일 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이 기이한 사랑의 도피행각은 현지 언론의 문화면을 장식한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롤란드는 지연희의 예술을 비웃고 나중에는 학대까지 한다.
자신의 예술에 절망하고 사랑에도 절망한 지연희는 어느 순간, 기행을 일삼기 시작한다.
물감을 입에 머금었다가 화판에 토해내는가 하면, 물감에 술을 타 마시기도 한다. 심지어는 물감이 잔뜩 묻은 혀로 남편의 몸을 핥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행을 두고 독일의 평단은 "최첨단의 위대한 예술"이라고 극찬한다.
지연희는 결론내린다. "위대한 미술평만 존재하고 위대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작가의 현대미술에 대한 조롱과 반감이 드러나는 대목.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지연희와 작가인 김씨를 혼동할 수도 있다.
소설속의 여주인공처럼 김씨 또한 연하의 독일 청년과 결혼했고 현지에서 유명해졌기 때문.
그러나 혼란에 빠질 필요는 없다. 소설은 허구이고 엿보기일 뿐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