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불면의 밤'보낸 백전노장 두 감독
기사입력 1997년 03월 22일 14시 59분
"시집가기 전날에 숙면을 취할수 있는 처녀가 어디 있겠는가." 97프로축구 개막일인 22일 아침 LG의 박병주 감독이나 대우의 이차만 감독 모두 핏발선 눈으로 선수들 앞에 나타나긴 마찬가지였다. "잘잤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질문에 양 감독의 대답은 한결같이 "어떻게 잘 잤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다.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환갑을 바라보는 노병 박병주 감독（55）이나 87년 프로리그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던 `40대 기수' 이차만 감독（49）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LG 박병주 감독은 비록 실업팀이지만 서울은행 감독을 17년간 엮임한 백전노장. 하지만 최근 2연 연속 꼴찌였던 프로팀 LG의 사령탑을 맡아 치르는 프로 데뷔전이란 부담감 때문에 개막전야를 뜬눈으로 지새웠다. 박감독은 먼동이 트기전인 새벽 4시에 숙소 근처 창원 올림픽공원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닐다가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병사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겨우 식사시간이 다돼서야 숙소로 돌아와 선수들과 함께 식사를 마쳤다. 사정은 대우 이차만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83년 대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84년 팀우승의 조연을 맡았고 87년엔 직접 우승팀 감독이 되는 화려한 경력의 지도자다. 하지만 92년 팀을 떠난지 5년만에 `축구명가 재건'이란 임무를 부여받고 친정집 대우로 돌아와 치르는 올시즌 개막전은 이감독에게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개막전야의 고통을 이감독은 "어제는 밤이 없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화려해 보이기만 한 프로감독들의 이런 애환을 읽을수 있는 축구팬들이 얼마나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