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 (8)
기사입력 1997년 02월 16일 14시 28분
호걸의 힘은 놀라웠다. 호걸이 뒤에서 공격하는 통에 앞다리에 힘을 잃은 사자가 푹 쓰러지자 두 다리로 머리와 등을 누른 채 목덜미 공략을 계속했다. 사자는 곧 발버둥칠 기력조차 잃어버렸다. 호걸만큼 싸움을 잘하는 호구도 형 못지 않게 사자 한 마리를 맡아 초주검으로 만들었다. 간이 방사장은 호걸 4형제의 `무력 전시장'이 된 셈이다. 바로 그 순간 다른 한쪽에서는 호걸 4형제와 함께 5대5 균형을 맞추기 위해 들어온 미호가 사자 2마리에게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 호걸에게 걸려 죽을 뻔한 위기를 겨우 넘긴 사자가 미호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걸 4형제에 비해 싸움을 못하는 미호로서는 도저히 사자 2마리를 상대할 수 없었다. 1대1 싸움에서 겨우 버티던 미호는 1대2가 되자 결정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미호는 곧 밑에 깔렸다. 목덜미와 아랫배를 물린 미호는 괴로운 비명을 질렀으나 호걸 4형제 가운데 누구도 도와주려고 나서지 않았다. 자기 자신과 확실한 피붙이 말고는 돕는 일이 거의 없는 호랑이의 특성이 나타난 것이다. 호랑이는 보통 한번에 1~6마리씩 태어난다. 그러나 태어난 새끼호랑이가 모두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성장과정에서 몇마리는 죽게 마련이다. 죽는 이유는 간단하다. 형제들끼리 싸우다가 죽는 것이다. 호랑이 세계에서는 `집단 괴롭힘'이 매우 심하다. 처음에 장난으로 시작한 싸움에서 한 마리가 너무 약해 일방적으로 몰리면 옆에 있던 다른 호랑이들이 합세해 아주 죽여버리는 것이다. `약한 호랑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 호랑이 망신을 시키지 말라'는 듯하다. 사자와 달리 어른이 되면 독립생활을 하는 호랑이인만큼 본능적으로 어려서부터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셈이다. 호걸 4형제가 미호를 돕지 않은 것도 바로 잠재해 있던 본능 탓이었다. 호랑이의 타고난 이기적 성격 때문에 미호는 끝내 죽어야만 했다. 사육사들은 호랑이의 성격을 알고 있었지만 외부의 적과 싸울 때도 이런 성격이 나타날지는 미처 몰랐었다. 5대5 시험 합사는 사자와 호랑이가 한 마리씩 죽는 혈투로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