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⑨
기사입력 1996년 05월 17일 15시 30분
대황제일검 이소야를 쓰러뜨린 당세무적의 고수. 그는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마시면 반드시 여자를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기방(妓房)을 찾은 것일까. 사원은 침상에서 내려왔다.
"술을 가져 오너라."
기녀는 감히 거역하지 못한다.
"몇 근이나 올릴까요?"
"내가 엉뚱한 소리를 꺼내지 않고 너와 함께 밤새워 환락속에 헤맬 수만 있도록 해다오." "알겠습니다."
대충 의복을 주워 걸치는 기녀.
문을 열고 나서려다가 흠칫 놀라고 만다.
입구에 소년 한 명이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게 아닌가. 히죽 웃는 모습이 악동(惡童) 그대로다. "난 아귀라고 하오.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찰떡 같은 관계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아귀는 진작부터 그곳에서 방안을 엿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원이 손짓을 했다.
"넌 아직도 내 무적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구나."
아귀는 넉살좋게 웃는다.
"하하하. 일단 점찍어 놓은 물건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건 우리 가문의 내력이오."
사원이 묻는다.
"이소야는 어떻게 됐느냐?"
"그는 물론 죽지 않았소."
"알고 있다. 그는 끝내 죽기를 희망했지만 난 그런 비겁한 검객을 상대로 살수를 전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죽었을런지도 모르오."
아귀의 심각한 얼굴을 보면서 사원은 자신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상처가 심했냐?"
아귀는 도리질을 했다.
"아니오. 당신과 함께 관제묘에서 아찔한 재미를 봤던 염정선라 석부용이 나타나서 이소야를 죽이려 했소." "그녀가 왜?"
"해동검결을 원하고 있었소."
"이소야가 해동검결을 지니고 있었느냐?"
"아니오."
"그럼…?"
아귀는 담담하여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내가 지니고 있었소. 그러나 이소야가 원하길래 그에게 넘겨줬소. 그의 말에 따르면 그건 검결이 아니라 심양성의 동방왕자궁에 반드시 전해야할 제왕학이란 학문서적이라 하오." "제왕학(帝王學)?"
사원은 매우 놀랍다는 듯이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