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가전 전문업체 '쿠첸'이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으며 논란에 휩싸였다. 쿠첸은 거래중이던 하도급업체가 단가 인상을 요구하자 기술자료를 빼돌리고, 다른 업체에 이를 전달하며 거래처 변경을 시도한 혐의를 공정위로부터 받고 있다.
공정위 "하청업체 기술 빼돌려" VS 쿠첸 "회사 자체 기술이자 불가피한 조치"
공정위는 쿠첸이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기술자료를 다른 업체에 전달, 거래선을 변경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첸은 지난 2018년 3월부터 2019년 1월까지 4차례에 걸쳐 납품 승인을 목적으로 수급사업자(하도급 업체)로부터 받은 인쇄 배선 기판 조립품 기술자료를 제3의 업체에게 전달했다.
공정위는 쿠첸이 기존 협력업체인 A사의 경쟁업체인 B사를 새로운 협력사로 등록시키기 위한 목적 하에 기술자료를 넘겼다고 봤다. 또 쿠첸이 A사가 단가 인상을 요구하자 쿠첸은 B사와 또 다른 업체 C사에 다시 기술자료를 전달하며 거래선을 변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쿠첸이 A사와의 단계적인 거래 규모 축소를 계획, C사에 기술자료를 또다시 넘기며 이를 활용하도록 지시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공정위는 쿠첸이 거래상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수급사업자로부터 받은 기술자료를 제공 목적이 아닌 회사 차원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차례 부당하게 사용했다고 결론내린 상황. 이에 따라 기술자료 유용 행위에 대한 위법성 인식 정도, 실행 적극성 및 정도, 위반행위 기간, 의사결정 주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법 행위를 주도한 차장급 직원을 각각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쿠첸은 신규 경쟁업체를 협력업체로 등록시키고 거래선을 변경하려는 목적이 분명했고 기존 수급사업자와의 거래가 단절된 것으로 볼 때 위법 행위의 부당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는 쿠첸이 협력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에서 정한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점도 함께 지적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첸은 2015년 11월 25일부터 2018년 12월 18일까지 앞서 언급한 기존 협력업체 A사를 포함한 6개 수급사업자에게 밥솥 등과 관련한 부품 제조를 위탁했다. 이 과정에서 쿠첸은 이들 수급사업자에게 부품 제작 관련 기술자료 34건을 요구했지만, 서면 요청은 한 건도 없었다. 공정위는 기술자료를 요구한 행위의 사유는 정당하지만 법정 사항에 대해 미리 협의해 작성한 서면을 주지 않은 점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쿠첸은 이번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 매우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쿠첸 관계자는 "이번 논란과 관련된 기술은 쿠첸 자체 기술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관련 사업의 특성 및 거래규모 등을 고려, 이와 같은 과징금 규모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쿠첸은 협력사의 일방적인 거래중단 통보에 따른 타 협력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시행했던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불구, 해당 사실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또 "자사의 입장 등을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이번 판결에는 이런 점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추후 의결서가 나오면 관련 내용을 면밀히 검토, 대응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쿠첸, 1년 사이 4배 영업손실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해외 수출 확장전략에도 차질
최근 쿠첸은 수 년간 이어진 실적 부진과 올해 초 이어진 '121밥솥' 리콜 사태 등으로 그다지 좋지 못한 실적 성적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으로 삼으려던 러시아의 상황도 쿠첸의 성장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단 우려까지 제기된다.
쿠첸의 지난해 매출액은 1633억3871만원이었다. 전년 1852억7534만원 대비 11.84%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57억8505만원으로 전년 대비 312.10% 증가했다.
크나큰 손실 폭의 원인은 올해 초 '121 전기압력밥솥' 제품 불량에 따른 소비자 리콜 여파로 풀이된다. 32억원에 달하는 리콜 관련 충당금이 판매보증충당부채로 반영됐다.
쿠첸의 연도별 매출액을 살펴보면 2018년 2233억원에서 2019년 2091억원, 2020년 1851억원, 2021년 1633억원으로 매년 감소해 왔다. 영업이익 역시 2017년 이후 매년 손실 폭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해외 시장 공략으로 성장 폭을 키우려던 경영 방침에도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겼다.
현지화 전략 하에 러시아어로 개발된 쿠첸의 멀티쿠커 '플렉스쿡'은 지난해 9월 러시아로 수출을 시작했다. 예상을 뛰어 넘는 인기에 수출 목표량을 기존 대비 3배나 끌어올렸지만, 이번 우크라니아 사태로 러시아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
업계 전문가들은 쿠첸이 여러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 속에 이번 공정위 제재까지 겹치면서 한층 힘겨운 시기를 맞닥뜨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대내외적 문제가 더해지고 있는 만큼, 매우 정교한 사업전략이 필요할 시기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조민정 기자 mj.c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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