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미국 휩쓰는 '렛츠고 브랜든' 밈 열풍…대체 무슨 뜻이길래

기사입력 2021-11-09 08:16

로렌 보버트 공화당 하원의원이 '렛츠고 브랜든' 문구가 적힌 드레스를 입고 트럼프와 사진촬영한 모습. [보버트 트위터 캡처]

'렛츠고 브랜든'(Let's Go Brandon)

미국 전역에서 요즘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유행하는 구호다. 이 구호는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뿐 아니라 대로변이나 세차장 입구, 집회 현장,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관중석에도 등장한다.

단순 번역하면 '힘내라 브랜든' 정도의 의미인 이 구호는 주로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 일종의 밈(meme·인터넷을 중심으로 모방을 거듭하는 유행)처럼 퍼져나가며 대유행하고 있다.

◇ 美 자동차 경주대회서 유래…도로변·세차장·월드시리즈에도 등장

이 구호가 탄생하게 된 발단은 지난달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탤러디가에서 열린 미국스톡카경주협회(NASCAR) 주최 자동차 경주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장 취재하던 NBC스포츠 기자는 이날 처음 우승한 28세의 브랜든 브라운이라는 선수를 생중계 인터뷰했는데 브라운이 인터뷰하는 동안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이 뭐라 알아듣기 힘든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화면에 포착됐다.

기자는 "관중들이 '렛츠고 브랜든'이라고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 화면이 이어지면서 관중들이 외치는 구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욕하는 'F**k 조 바이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공화당 지지자들은 '렛츠고 브랜든'을 'F**k 조 바이든'이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정치풍자 밈이 된 것이다. 키워드 검열에서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었다.

처음에는 주로 스포츠 경기장에서 등장했다. 지난달 9일 대학 미식축구 경기가 열린 앨라배마주 조던 헤어 스타디움에서 관중들은 "렛츠고 브랜든"을 외쳤고, 경기장 상공에는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매단 비행기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월드시리즈를 관람한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이 한 야구팬 옆에서 "가자 브랜든! 말해 봐"라고 부추기는 영상을 찍어 틱톡과 트위터로 공유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시카고 교외 건설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시위대가 '렛츠고 브랜든' 구호를 외쳤다. 바이든의 차량 행렬이 뉴저지주 플레인 필드를 지나갈 때도 '렛츠고 브랜든' 현수막이 등장했다.

지난달 31일에는 텍사스 휴스턴에서 뉴멕시코 앨버커키로 가던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 조종사가 기내 방송을 하면서 "렛츠고 브랜든"이라고 말했다가 내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누구보다 반색하는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다.

트럼프 캠프는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 '렛츠고 브랜든' 밈이 급속히 확산하는 것을 보고 같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만들어 배포했다.

지난달 30일 월드시리즈 4차전이 열린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경기장에서 관중들은 경기를 관람하던 트럼프 전 대통령 부부를 향해 "렛츠고 브랜든"을 외치기 시작했고, 트럼프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렛츠고 브랜든'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인다.

미국 각지 도로변에 이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졌고, 지난달 16일에는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한 세차장 출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 '렛츠고 브랜든'이 등장했다. 표지판은 해킹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의원들이 공식 석상에서 "렛츠고 브랜든"을 외치는 장면도 흔해졌다.

빌 포지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은 지난달 21일 의회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렛츠고 브랜든"이라며 연설을 마쳤다. 제프 던컨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은 '렛츠고 브랜든'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의회에 나타났다.

호주 공영 ABC방송은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 일종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수단으로 '렛츠고 브랜든' 구호가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 바이든에 등돌린 유권자 분노 반영…"미국 정치에서 흔한 일"

'렛츠고 브랜든' 구호가 이처럼 유행하는 현상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NBC방송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성인 71%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53%에 달했던 바이든의 직무수행 지지율도 42%까지 떨어졌다.

올해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물류 대란, 물가 폭등 등 부정적 이슈가 잇따르면서 민심이 등을 돌렸다. 지난 2일 치러진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가 대표적인 그 결과물이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여겨진 이 선거에서 공화당의 정치신인 글렌 영킨 후보는 예상을 깨고 민주당의 테리 매컬리프 후보를 꺾었다. 버지니아주는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었기에 바이든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친(親) 트럼프 성향인 영킨과 민주당 유력 인사들과 가까운 매컬리프의 대결은 바이든과 트럼프가 1년 만에 맞붙은 대리전 성격도 있었다.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층도 바이든에 등을 돌린 결과가 영킨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BBC는 "물가 상승과 경제 회복 둔화, 교착 상태에 빠진 입법 의제, 혼란스러운 아프간 철수 등이 바이든의 인기를 끌어내렸다"고 지적했다.

'렛츠고 브랜든' 구호의 유행은 이처럼 국민적 인기가 떨어진 바이든에 대한 조롱이지만 미국 정치사에서 특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고 호주 ABC는 전했다.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미국에서는 과거에도 대통령을 향한 신랄한 조롱이나 풍자가 흔히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이든의 전임인 트럼프만 해도 독특한 캐릭터 덕에 재임 중 다양한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됐다.

그를 생떼 쓰는 어린아이에 비유하거나 트레이드 마크인 '수탉 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풍자한 밈이 유행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나 빌 클린턴, 그로버 클리블랜드,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도 반대파들의 조롱과 풍자를 피해가지 못했다고 호주 ABC는 설명했다.

매튜 델몬트 다트머스대 역사학과 교수는 "과거와 지금의 다른 점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확장성"이라며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에는 저급한 의견을 큰 소리로 표현할 만한 공개된 장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렛츠고 브랜든' 구호가 너무 원색적이고 상스러운 표현이 담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CNN의 정치평론가 크리스 실리자는 바이든을 싫어하는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인사말로 이 표현이 애용되고 있다면서 인터넷에서 명멸한 수많은 밈처럼 이 표현도 보편화되는 순간 퇴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호주의 유명 유튜버이자 방송 해설자인 데이지 카우슨스는 호주 스카이뉴스에 "'렛츠고 브랜든' 구호는 매우 예의 바르고 매력적일 뿐 아니라 멋지게 풍자적인 표현"이란 견해를 보였다.

passion@yna.co.kr

<연합뉴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