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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금기어 '라떼'를 쓸 수밖에 없겠다. 라떼(나때), 곱창은 소위 '으른'의 음식이었다. 서울 교대앞 전통의 거북곱창에서 직장인들이 소주 한잔에 인생의 페이소스를 비워내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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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일과 수업, 일상 전부를 해결해야 하는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의 시대, 외식도 회식도 불가능한 세상에서 배달음식 매출은 매월 커리어하이를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배달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무려 17조3828억원. 전년(9조7328억원) 대비 78.6% 증가했다. 올해도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올해 7월 한달간 온라인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조3778억원으로 전년 대비 9992억원, 72.5%가 늘었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배달앱 1위업체'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의 올해 상반기(1~6월) 결제 추정금액은 무려 8조원에 달한다. 8월 결제금액은 1조9087억원, 결제자수는 1553만 명으로 역대 최다다. 지난해 동월 대비 79%, 2019년 동월 대비 258%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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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곱창 배달은 답답한 코로나 시대 운동과 음주, 캠핑에 진심인 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직결된다.
곱창을 왜 좋아하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청년들의 대답은 "맛있으니까"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오늘 나의 행복이 지상과제인 이들은 '미식'과 '핫플(핫플레이스)'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스타일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원하는 걸 원없이 먹되, 불꽃처럼 치열하게 운동하자'는 주의다. 배달음식으로 친구들과 곱창을 즐긴다는 대학생 오승준씨(22·부산 암남동)는 "혼자 곱창을 시켜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곱창의 경우 비싸서 혼자 시켜먹기 부담스럽다. 친구집에서 술 먹을 때 자주 시킨다. 배달비도 나눠서 낸다"고 했다. "곱창이 고칼로리라는 걸 알지만 다들 맛있으니 먹는다. 먹고 뛰면 된다"고 했다.
먹는 것만큼 몸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세대다. '3대 500(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3대 중량 운동의 합이 500)'은 영원한 로망이다. 수개월간 고강도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원하는 몸을 만든 후 일명 '바프', 바디프로필 인생사진을 SNS에 찍어 올리는 20대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5일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바디프로필 태그 게시물은 무려 246만개에 달한다. 이들의 워너비 몸은 '스키니' 아이돌이 아니다. 탄탄한 근육질, 매력적인 바디라인에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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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 케토제닉 다이어트로 살을 빼려는 여성들에게도 곱창은 매력적인 음식이다. 케토제닉 다이어트 전도사로 이름 높은 미국 피트니스 트레이너 드류 매닝은 2019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완벽한 다이어트 식품을 발견했다. 바로 곱창"이라며 곱창 예찬론을 펼친 바 있다. '운동하면 0칼로리' 고단백 고지방 곱창을 실컷 먹고 마음껏 뛰면 된다는 메시지에 MZ세대는 안도하고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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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곱창 배달 급상승은 MZ세대의 '홈파티' 음주 문화와도 연관이 있다. 코로나 4단계, 세상의 모든 식당은 밤 10시 문을 닫는다. 술도 친구도 포기할 수 없는 청춘들은 누군가의 집, 자취방에 결집해 배달앱을 켠다. 곱창 안주를 시켜 소주와 함께 들이킨다. 여행도, 외식도 못하고 놀거리도 마땅치 않은 이들은 삼삼오오 '홈술'로 밤새 우정을 쌓는다. 지난해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19~34세 대상 설문에 따르면 53.6%가 술과 술자리를 모두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과 술자리를 모두 싫어하는 비율은 7.7%로 가장 낮다. 첫 음주를 라방(라이브방송)으로 기념하고,'취중라방'을 찍어올리고, 홈파티, 술자리를 좋아하고, 어느 시대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술 무용담을 즐기는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야식 안주가 곱창이다.
곱창의 끝없는 인기에는 TV예능, 먹방 유튜브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여름 MBC '나혼자 산다'에서 화사의 먹방 이후 곱창 대란이 났다. 유튜브엔 쯔양의 곱창 21인분 먹방을 비롯해 유명인들의 곱창 먹방이 넘쳐난다. 가수 홍진영이 언니 홍선영의 다이어트 치팅데이에 찾은 '곱떡'집, 10년 단골, 신사동 곱창집도 유명하다. 이 현, 송해나 등 완벽한 몸매를 지닌 슈퍼모델의 최애 야식도 곱창이다. 연예인들의 '소울푸드'이자 한번쯤 도전해봐야 할 '인싸템'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고3, 대학생 두 딸을 키우는 정보람씨(48·서울 도곡동)는 "딸들이 소곱창을 아주 좋아한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영향도 크다고 본다. 딸이 가자고 해 홍진영 곱창집에도 함께 갔었다"고 했다.
'곱나좋군' '곱이곱다' '청년곱창' '곱창 파는 청년' 등 곱창집 네이밍에도 청년의 기운이 감지된다. 2030세대를 겨냥한 곱창 메뉴의 무한변신도 눈에 띈다. 돼지곱창에 치즈 토핑을 얹고, 떡볶이와 파스타에 곱창을 얹는다. 전통의 곱도리탕(곱창+닭도리탕), 낙곱새(낙지+곱창+새우)는 물론 곱창떡볶이, 대창파스타, 막창덮밥 등 '콜라보' 신메뉴도 인기다. '외식업의 대부' 트렌드세터 백종원이 사당동에 곱창집을 오픈했다니 말 다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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