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통의 문구기업 모나미가 최근 명화를 모티프로 한 초고가 제품을 선보였다. 해당 볼펜의 가격은 무려 1만4000원. 그런데 신제품 출시와 더불어 바로 '반값' 할인 행사를 진행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코로나19 속 사회 분위기, 변화하는 시대 트렌드에도 고급화 전략 고수하는 모나미
그러나 1만4000원짜리 볼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일부는 "'153 리미티드' 에디션이 처음 출시될 때만 해도 '친근한 모나미 볼펜의 고급화'라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했는데,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여러 종류의 에디션 출시가 잦아지면서 희귀성이나 소장가치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신제품 출시 기념으로 9월 2일까지 50%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그동안 신제품을 출시하며 30% 할인 행사를 진행한 적은 있었으나 가격을 절반이나 할인해 판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 값을 주고 사는 사람은 호갱이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모나미는 이에 대해 "기존 제품 153 네오 시리즈의 공식 온라인 몰 정가는 1만2000원으로 이번 신제품과의 가격 차는 2000원"이라면서 "이번 프로모션은 신제품 출시를 알리기 위해 '단독 선판매' 개념으로 진행된 것으로, 회사 차원에서 그와 같은 우려는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모나미의 프리미엄 마케팅은 2014년 153볼펜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모나미 153 리미티드'가 큰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나미는 이 때 고급 필기구 시장에 대한 성장 가능성을 봤다. 실제로도 이 전략은 효과를 발휘해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모나미의 고급 필기구류 매출은 성장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 변화 속도는 생갭다 훨씬 빠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과시성 소비는 줄어들고, 사회 분위기 또한 사뭇 달라졌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이나 소매업자들의 어려움을 공유하는 차원의 '사회공헌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또 소비 주체로 떠오르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신념을 소비 활동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착한 소비(미닝 아웃, Meaning Out)'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 역시 "의미 있는 가치를 더한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높은 가격이라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프리미엄 전략은 의미가 없다. 업계 리딩브랜드답게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담아 제품 가치를 올리는 방향으로 고민을 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문구류 시장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지 않는 모습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기존 필기구류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절대적인 학령인구 또한 감소했다. 또 코로나19로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 수업이 일반화되면서 학습 할동에 디지털 기기들을 활용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모나미가 혁신과 변화 없는 고급화 전략과 마케팅에만 주력하면 급격히 줄어드는 시장 규모와 트렌드 변화 속에서 불가피하게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이와 관련 모나미는 "디지털 시대 도래로 문구 시장 규모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으나 소비자들에게 소장용 제품으로서의 가치 확대와 문구를 매개로 한 즐거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체험형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적자로 돌아선 실적에도 화장품 사업 진출?…보다 신중한 한 발 필요할 때
모나미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335억원을 기록했으나 2분기는 287억원으로 14%나 감소했다. 1분기 4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은 2분기 들어 적자로 전환했다. 당기순손실은 23억원에 달한다.
모나미는 올해 상반기 적자 전환 이유로 '화장품 공장 설비 및 시설 투자 등 신규사업 추진에 따른 투자비용 발생'과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개학 연기, 소비심리 위축'을 꼽았다. 그러면서 "업계에서 60여년 간 축적한 색조배합 노하우와 사출 금형 기술력을 활용해 코스메틱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독일의 필기구 브랜드 스타빌로, 일본의 파이롯트, 펜텔 등 글로벌 문구 기업들의 화장품 사업 진출 전략을 벤치마킹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9년 모나미는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화장품 제조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업계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연말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에 화장품 생산공장 설비도 완료했다. 모나미는 연내 펜 타입의 아이메이크업 제품과 네일 제품 등을 ODM(제조사 개발생산)이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제조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당 공장의 본격 가동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화장품 업체들로부터 제조와 관련, 수주를 따내야 하는 입장이기에 연내 가동 여부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모나미 측은 "공장 가동을 위한 기본적인 인증 절차는 모두 거친 상태다. 화장품 제조에 추가적으로 필요한 인증들을 자진해서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가운데 일부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은 모나미의 화장품 관련 사업 진출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다. 해외와 달리 국내 화장품 사업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기 때문이다. 유명 패션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는 물론 제약사에 이르기까지 화장품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곳들이 많아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특히 ODM과 OEM 시장은 '한국콜마'와 '코스맥스'의 투톱 체제가 굳혀진 지 오래다. 이와 같은 시장 특성 상 기존 기업이 화장품 제조 경험이 전무한 회사에게 섣불리 제조를 맡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전문가들은 모나미에 대해 사업 다각화 전략을 꾀하기보다는 기존 제품 R&D에 집중하는 것이 안정적이면서도 매출 회복을 기대할 만한 방안이라 제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나미의 특허 및 상표·디자인 출원 현황은 지난 201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모나미가 내놓은 필기구 특허 수는 2017년 4개에서 2018년에는 2개로 줄었고, 지난 해에는 단 1개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모나미는 국내 필기구 시장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왔던 만큼, 연구개발을 통한 기존 제품 및 사업 전문성 제고에 주력하고 신사업 진출에는 한층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정 기자 mj.c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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