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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연일 화제다. 의사들의 전문적이고 냉철한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 우정과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았다는 반응이다. 드라마의 인기 고공행진과 함께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업무 전반적인 내용은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프고 상처받은 말들과 교감하며 채워지는 그들의 일상은 조금 특별하다. 어렵고 난해해 지칠 때도 부지기수다. 일례로 말들에게는 일반적인 '산통'이라는 병이지만 수의사들에게는 짐작할 수 없는 결코 쉽지 않은 미션으로 떨어진다. 그들이 이러한 난관을 어떻게 진단하고 극복할지, 말 수의사들이 생생하게 전하는 '슬기로운 말 수의사 생활'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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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소화기관이 무척 길고 용적도 상당하다. 1.5m 길이의 식도를 지나 15L 크기의 위가 연결돼 있으며 이어서 길이 15~22m, 용적 55-70L의 소장에 다다른다. 7m 길이의 대장은 140-150L의 큰 용적을 차지한다. 이렇게 거대한 말의 장은 다른 동물과 달리 복강 내에 견고히 붙어있지 않고 매달려 둥둥 떠다니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장의 위치가 변하고 꼬여서 막히기 쉽다.
말이 배앓이를 앓아도 호소할 순 없기에 말 수의사는 배앓이를 하는 말을 만나면 먼저 청진기를 활용해 문진을 하고, 말의 행동을 관찰한다.
산통증상이 있는 말은 대부분 통증 반응을 발현하는데 발 긁기, 심박 증가, 헐떡임, 눕기, 구르기 등이 대표적인 통증반응이다. 이마저도 경중의 정도가 다양하며 때론 통증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식욕감소, 배변불량, 고체온증 등을 증상이 다양하며 이 역시 말마다 양상이 다르다.
산통을 유발하는 원인은 장폐색(막힘), 변위(위치변화), 장중첩, 가스축적, 변비, 식체, 장경련, 장염, 장 내 모래축적, 위궤양, 독소감염 등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원인 중 정확한 진단을 찾아내기 위해 말수의사는 여러 진료행위를 한다. 말의 신체 상태 확인을 위해 체온 측정, 청진, 호흡수 측정 등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수행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각종 수치를 확인한다. 직장에 손을 넣어 장을 만져보기도 하고 복부 초음파를 통해 장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도 수행한다. 이렇듯 산통은 원인도 다양하고 증상도 다양해 진단을 위해 여러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산통은 신음하고 있는 말도 힘들게 하지만 그 옆에 서 있는 말 수의사에게도 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질환이다.
산통의 원인을 진단하고 나면 바로 치료를 진행한다. 원인이 다양해 처치도 다양하지만 크게 약물을 이용한 내과적 처치와 수술을 통한 외과적 처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과적 처치는 소염진통제, 진정제, 수액, 영양제 등 증상에 적합한 약물과 식이조절 등을 통해 치료하는 방법으로 많은 경우 내과처치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된다. 내과처치로 호전되지 않거나 애초에 내과치료가 불가능한 케이스의 경우 개복술을 실시하기도 한다. 전신마취 후 배를 열어 장기를 절개하거나 장문합(장을 잘라 서로 이어붙임), 위치교정 등 각종 기법으로 수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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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에 이르는 말을 수술하는 과정은 육체적 노동이 수반된다. 수술복, 마스크, 장갑, 모자로 온몸을 덮은 수의사들은 150L에 육박하는 대장을 온몸으로 껴안는 듯한 모습으로 장을 꺼내고 20m에 달하는 소장을 일일이 만져가며 탐색한다. 몸속 깊이 있는 장기에 접근하기 위해서 까치발을 선 채로 있다 보면 어느 새 말 복강에 뛰어들 것만 같은 자세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산통의 원인을 찾고 나면 의학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가위, 칼, 겸자 등과 같은 기구를 이용해 수술을 하고 굵은 실과 바늘로 복부를 봉합한다. 말이 전신마취에서 깨어 회복하고 나면 수술은 종료되는데 여기까지 최소 2시간에서 길면 6~7시간이 소요된다.
산통은 언제 어디서나 응급 상황으로 발생할 수 있다. 수술이 지체된다면 수 시간 내에 말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로 인해 산통 응급진료와 수술을 대기해야 하는 일은 말 수의사들에겐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때로 9시가 넘은 늦은 밤에 응급진료를 하고 수술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술 후 말이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면 새벽 3시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때도 있다. 수술 이후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하기를 기원하지만 결코 사명감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칠 법도 한데 그들은 오늘도 말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한다.
수의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에는 따뜻하면서도 투철한 직업 정신이 담겨있다. 한국마사회 정재민 수의사는 "수술이 잘 돼 건강한 모습으로, 당장 경주로를 누빌 것 같이 활기차게 말이 퇴원할 때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힘들고 고되지만 동물이 전하는 감동은 말 수의사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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