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엽, 유럽대륙은 나폴레옹의 끝없는 야욕에 춤추며 신질서가 다듬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유독 도버 해협 너머에 있던 영국만이 나폴레옹에 맞서고 있었다. 바다에서 프랑스 함대의 진입을 저지하고 끝내 트라팔가 해전에서 조국을 구한 넬슨 제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전이 끝난 빅토리아 기함에서 운명 전 그는 마르살라 와인을 찾았다.
1805년 그 해 10월의 트라팔가 해역에는 드센 해풍과 함께 파도가 크게 일고 있었다. 황제 나폴레옹의 칙령에 따라 나폴리로 향행하기 위해 카디스 항을 나온 프랑스 함대 사령관 빌뇌브는 33척의 함선들을 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려 했다. 호시탐탐 프랑스 함대의 동태를 주시하던 넬슨이 27척의 함대를 이끌고 위장했던 곶(串)에서 출격, 프랑스 함대를 맹렬한 기세로 덮쳤다. 놀란 프랑스 함대는 황망히 북쪽으로 진로를 바꿨지만 영국 함대가 틈을 주지 않고 2열종대로 앞쪽에서 함대의 한가운데로 돌진하면서 순식간에 좌우로 적 함대를 교란시켜 버렸다. 넬슨이 거느린 15척의 전함과 부사령관 콜린우드가 지휘하는 12척의 전함은 종전과 전혀 다른 공격법을 썼다. 바다를 뒤엎을 듯한 포성과 함께 프랑스 함대의 전위가 화염에 휩싸였다. 빌뇌브의 전함들은 거의 응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함대의 머리가 불타고 허리가 잘리면서 프랑스 해군의 참담한 패배가 뒤따랐다. 격침된 프랑스 측 전선이 5척, 나포된 선박이 17척, 전사자 8000여 명에 비해 넬슨 함대에는 피격되거나 침몰, 나포된 전함이 없이 전사자만 1600명이었다. 영국 측의 대승이다.
트라팔가 해전을 담은 그림.<사진=와인리뷰 제공>
탁월한 전술과 용맹성으로 적을 압도한 넬슨이었지만 그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던 도중 넬슨은 적함의 저격병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최후의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통을 참고 견디며 승리를 확인한 뒤에서야 숨을 거두었다. 1805년 10월 21일 오후 4시. 기함 빅토리아 호에서 4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 그는 희미한 목소리로 "나는 스무 살의 약속을 지켰다. 나는 나의 의무를 다했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제독 동상
넬슨(Viscount Horatio Nelson, 1758~1805)은 영국이 낳은 위대한 해군 전략가인 동시에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을 막아낸 구국의 영웅이다. 영국 노포크 지방의 한 목사 아들로 태어나 병약한 약골로 볼품없는 소년으로 자랐다. 허나 20세의 나이에 전함의 함장이 되었고 짧은 생애 동안 코르시카 해전(1794)에서 오른쪽 눈을 잃고 세인트 빈센트 해전(1797)에서 오른쪽 팔마저 잃었다. 1798년 나일 강 전투에서 다시 승전보를 울리면서 그는 영국 함대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략 전술가로 평가받았다. 지금,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높다란 그의 동상이 서있다. 그리고 주변을 수많은 비둘기들이 노닌다.
까를로 펠레그리노 마르살라 슈페리오레 가리발디 돌체 NV<사진=와인리뷰 제공>
마르살라는 포티파이드 와인으로 유럽풍의 전통적 식사에 아페리티프 와인으로 쓰인다. 이러한 식전주 와인에 이름난 몇몇 명주가 있다. 스페인의 셰리,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그리고 시칠리아 섬의 마르살라 와인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아페리티프 3대 명주라고 하기도 한다. 마르살라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17~18°수준에 이른다. 보통 와인의 발효가 진행될 때 높은 알코올 도수의 스피릿을 투입해 발효를 멈추게 하므로 포티파이드 와인을 얻는다. 옅은 황금색을 띠며 우아하고 균형감이 좋다. 현재 하이트진로가 수입, 유통시키고 있다. <와인리뷰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