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는 다르다. 실질적인 대책안 마련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10일 이동통신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저마다 통신관련 정책 변화와 관련된 정보 수집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이 통신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부터 기본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정부 주도로 통신비 인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통 3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세웠던 기본료 폐지 공약에 난색을 표했지만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이후에는 무조건적인 반대는 하지 못할 것"이라며 "정부차원에서 만족할 수 있을 만한 협상안을 만들기 위해 내부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료 폐지 정책 반영 여부에 '촉각'
이통업계가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통신정책 가운데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기본료 폐지의 정책반영 여부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통신 기본료 완전 폐지 등 가계통신비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강조해왔다.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달 11일 기본료 폐지 공약을 처음으로 밝히자 이통사들은 즉각 난색을 표했다. 1만1000원의 통신 기본료가 폐지될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의 감소로 이어져 기업 활동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가 1만1000원의 기본료를 폐지하면 적게는 6조원에서 많게는 8조원까지 매출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통3사의 영업이익이 3조6000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영업적자로 돌아서 통신장비 구축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통 3사는 무엇보다 정부가 기본료 폐지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전기통신사업법 등에서는 통신요금을 시장 경쟁원리에 따라 이통사들이 자율적으로 책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업계의 반발에도 기본료 폐지의 의지를 불태웠다. 지난달 28일 대선 후보 공약집에 '월 1만1000원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를 고수했다. 통신망과 관련한 설비투자는 이미 끝난 상태로 기본료 폐지를 통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시민단체들도 문 대통령의 기본료 폐지 공약에 힘을 싣고 있다. 이통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기본료 인하에 따른 매출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기본 통신료 폐지가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통신망의 감가상각 연한은 8년 가량이라는 게 통신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2G·3G망의 경우 감가상각 연한을 이미 지났다. 4G통신망은 2011년부터 2013년 무렵 설비투자가 대부분 진행, 시기적으로 봤을 때 4G망의 감가상각 연한은 2020년 전후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 관련 공약 이행 방안을 준비 중인 미래창조과학부가 문 대통령의 기본료 폐지 공약 실현여부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본료 폐지가 정부가 법적으로 강제할 사안은 아닌 만큼 이통사와 대화를 통해 통신비 인하 대책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도 이통업계의 적자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인식, 통신료의 단계적 인하론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본료 폐지가 이뤄진다면 가입자가 적은 2G와 3G의 기본통신료를 없애고 4G의 경우 추후 논의를 통한 통신비 인하 정책을 펼칠 것이란 게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이통 3사, 강제 사안 아닌 만큼 협상 명분 찾기 한창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통 3사는 향후 이뤄질 수 있는 기본료 폐지의 통신 정책 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명분 찾기에 한창이다. 현재로서는 기본료 폐지가 이뤄질 경우 차세대 통신기술인 5G의 설비투자 지연에 따른 문제와 통신서비스 품질 저하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데 뜻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 서비스 품질 저하 등은 문 대통령이 또 다른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4차 산업 육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인공지능(AI), 로봇기술, 사물인터넷 등이 대표적인데, 저마다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우수한 통신 품질은 곧 4차 산업에 육성의 주요 자양분이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2018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5G 서비스를 위해 이통사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5G망 관련 투자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기본료 폐지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4차 산업의 핵심인 사물인터넷, AI, 자율주행차 등은 모두 5G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만큼 정부와 논의를 통해 기본료 폐지 외에 다른 형태의 가계통신비 인하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문 대통령 측이 통신사가 그동안 수조원의 이익을 거둬왔고 사내유보금이 있어 5G 투자를 위한 여력은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향후 논의과정에서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 가능성…분리공시제는 쉽지 않을 듯
문재인 대통령의 가계통신비 절감 공약은 총 8가지다. 이중 통신기본료 완전 폐지와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 분리공시제 도입이 핵심이다. 다른 공약으로는 잔여 데이터 이월, 공공와이파이 확대 등이 있지만 소비자의 실제 체감도면에서 금전적인 효과를 바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통신기본료 폐지는 정부 정부차원에서 강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통신사와 협조가 수반돼야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조기 폐지는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추진이 가능하다. 새 정부의 통신정책 중 단통법 조기 폐지의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 기본료 폐지 여부는 정부 차원의 강제 개입이 불가능하고 통신사들과 협업이 필요하다"며 "현재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의 통신 관련 공약 중 현재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단통법 조기폐지 정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단통법을 개정, 지원금 상한제를 없애겠다고 밝힌 바 있다. 휴대폰 지원금 상한제는 통신사 간 과잉 경쟁을 막겠다는 취지로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과 함께 도입됐다. 과거 지원금 상한액은 있었지만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단통법 시행 첫해 30만원이었던 상한액은 2015년 4월 33만원으로 오른 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단통법은 오는 9월 30일 자동 일몰된다. 때문에 조기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단체 등이 가계통신비 인하에 있어 단통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말기 가격 분리 공시제 도입은 기본료 폐지와 함께 관련 업체들과 대화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 중 하나다. 분리 공시제란 보조금을 구성하는 통신사 지원금과 단말기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을 따로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제조사가 휴대폰 출고가를 부풀린 뒤 이통사의 고액 요금제 가입자에게 많은 지원금을 제공하는지를 감독할 수 있어 단말기 출고가 인하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단말기 제조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분리공시제 도입은 단통법 입법 당시 추진되다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와 일부 단말기 제조사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분리공시제 도입을 통신관련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변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판매 장려금 공개 등이 글로벌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워 반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책 실현을 위해선 정부와 단말기 제조사간 논의가 선행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새로운 정부가 일단 분리 공시제 실행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도입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