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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넘어 인공지능까지…통신업계 '세계 최초' 신경전

김세형 기자

기사입력 2017-02-10 08:43


통신업계가 또다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KT가 최근 출시한 인공지능(AI) 기반 TV 셋톱박스인 '기가 지니'를 광고하면서 '세계 최초'란 문구를 사용하자 SK텔레콤이 이를 반박하고 나선 것.

그동안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3대 통신회사는 툭 하면 자존심 대결을 벌여왔다.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면 으레 '세계 최초' 문구를 쓰고, 이를 놓고 경쟁사는 사실과 다르다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서 '1등' 타이틀은 해외에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엄청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통신사들의 자존심 싸움에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빠져있다. 소비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통신회사 간 자존심 싸움에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SK텔레콤, KT 기가 지니 광고 심의 보류 요청

9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지난 8일 방송광고심의위원회에 인공지능 TV '기가 지니'의 TV용 광고 심의 보류를 요청했다. SK텔레콤이 방송광고심의위원회에 기가 지니의 서비스가 세계 최초가 아니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KT는 지난달 17일 기가 지니를 출시할 당시 '세계 최초' 인공지능 TV라고 강조하며 극장과 올레 홈페이지 등에서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다. 같은 콘셉트로 오는 3월 방송 광고 송출도 준비했지만 심의 보류 요청으로 인해 방송 광고 진행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 측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심의 보류 요청을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내부적인 검토를 거쳐 '세계 최초' 문구 활용여부를 고민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KT 측은 "세계 최초라는 사실에는 문제가 없지만, 논란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자료를 보완할 계획"이라며 "광고 문구에서 '세계 최초'라는 표현을 빼기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기가 지니는 일종의 스피커 모양의 셋톱박스다. 기존 IPTV 셋톱박스에 스피커, 전화, 카메라를 결합해 TV 및 음악 감상·일정 관리·사물인터넷 기기 제어 등 각종 기능을 갖췄다. KT는 올레TV 가입자라면 기가 지니를 통해 IPTV를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기가 지니는 세계 최초 인공지능 TV'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이 KT의 광고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가 지니 IPTV에 음성 비서 서비스가 연동한 것일 뿐이며 기존에 나온 서비스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SK텔레콤의 인공지능 비서 '누구'가 SK브로드밴드의 Btv와 연동되고 있으며 애플·아마존 등도 2015년 IPTV에 자사의 음성 비서를 탑재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자사 뿐 아니라 글로벌업체들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KT의 '세계 최초' 문구가 소비자 오해를 살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일종의 자존심 대결"이라고 말했다.

재작년 3밴드 LTE-A에서도 '세계 최초' 놓고 충돌

통신사간 '세계 최초' 타이틀을 두고 자존심 대결을 벌인 것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1월 SK텔레콤이 3밴드 LTE-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는 내용의 TV 광고를 시작하자 KT는 사실과 다른 '허위·과장' 광고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LG유플러스도 서울중앙지법에 SK텔레콤의 3밴드 LTE-A 광고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SK텔레콤이 시험용 단말기로 100명의 체험단에 서비스한 것을 상용화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3밴드 LTE-A란 일반 LTE보다 4배가 빠른 서비스를 말한다. 3밴드 LTE-A의 최대 속도는 초당 300메가비트(bit)로 이론상 1GB 용량의 동영상을 내려 받는데 30초면 충분하다. SK텔레콤은 빠른 속도를 내세우며 소비자가 편리하게 이동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것 같던 자존심 대결이었지만 SK텔레콤이 3밴드 LTE-A 관련 광고에서 '세계 최초' 문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통신사들과 합의, 소송은 취하로 마무리됐다.

사례는 또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지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6' 개막 첫날 20.5Gbps 속도로 5G 데이터 전송을 시연하며 공공장소에서 20Gbps급 속도를 구현한 것은 처음이라고 홍보했지만 같은 날 에릭슨이 25Gbps를 웃도는 데이터 통신에 성공하며 '세계 최초' 문구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SK텔레콤 측은 당시 "개막 전까지 공공장소에서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KT는 20Gbps급 통신기술은 이미 개발이 완료돼 세계 최초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발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에릭슨이 시연한 장비가 KT와 함께 스웨덴 연구소에서 25.3Gbps 데이터 통신을 구현하는 데 사용된 장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MWC 전부터 SK텔레콤이 세계 최초로 20Gbps를 시연하겠다고 밝히자 KT는 세계 최초로 25.3Gbps 속도의 무선 데이터 전송에 성공했다며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타이틀 경쟁…소비자 만족도는 '뒷전'

통신업계에서 '세계 최초'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통신사 간 무리한 마케팅 경쟁 때문이다. 첨단기술이 활용되는 통신업계의 경우 세계 최초란 타이틀은 기업경쟁력 향상으로 직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이 첨단기술의 미묘한 변화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가입자 확대를 꾀하기 위한 홍보를 위해 '세계 최초' 타이틀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최근 통신기술 발달로 대부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슷한 수준의 커버리지 확보가 이뤄진 만큼 속도나 세계최초 등의 타이틀보다 콘텐츠와 다양화된 요금제 도입 등 고객만족도를 높이는 서비스를 통해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것이 회사 가치를 더 상승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장광고는 소비자를 현혹해 잘못된 제품 선택을 하게 할 수 있고 소비자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피해는 통신사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허위 광고 규제 등 강력한 이용자 보호 정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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