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의 채용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은행권이 올해 상반기 채용계획을 확정짓지 않으면서도 단기 계약직 채용은 진행해 청와대·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에 부응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4·13 총선 등 굵직한 정치권 이슈에 온 나라의 시선이 쏠리면서 청와대·정부의 관심도 크게 줄어든 만큼 은근슬쩍 지나가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이유로 은행권이 지나치게 얕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보여주기식 채용, 상반기는 쉬어간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도 "외환은행과 합병 후 지난해 뽑은 하반기 채용인원이 이제 막 부서에 배치됐다"며 "312명이라는 역대 한 기수 최대 인원을 뽑은 만큼 상반기 채용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KEB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통합된 KEB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 통합 이후 총 924명에 대해 특별퇴직을 단행했다. 채용한 인원보다 내보낸 인원이 더 많은 셈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은행권 최다인 500명을 신규 채용했다.
KB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아직까지 상반기 채용을 확정하지 못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상·하반기 모두 신규 채용을 진행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 채용을 진행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지난해 상반기 채용도 5월쯤 공고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120명 포함 총 420명을 선발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도 "아직까지 올 상반기 채용을 진행할지 말지 내부적인 검토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에도 5월쯤 상반기 채용을 진행한 만큼 좀 더 시간이 지나야 가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우리은행은 지난달 시작한 개인금융서비스(RS) 분야 신규 채용인력 140명에 대한 면접을 진행하고 지난 22일 최종 합격자를 공지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200명, 총 400명을 채용했다.
신한은행도 상반기 채용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아직까지 채용 인원수와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채용공고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매년 상반기에 채용을 진행한 만큼 올해도 예년 수준의 인원을 뽑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인사상의 여건 때문에 채용을 진행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에 상반기 144명 포함 374명을 채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은행권은 실적부진과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많은 경력자들을 내보냈다"며 "지점과 인력을 줄이며 다이어트에 돌입한 은행들이 정부의 압박에 지난해 필요 이상의 인력을 채용했기 때문에 올해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단녀 채용으로 정권 정책 완수?
정규직 채용에 인색한 가운데 정부 정책 중 하나인 경단녀에 대한 채용은 지속한다. 국민은행은 지난 21일까지 경단녀를 대상으로 파트타이머 지원서를 받았다. 주로 창구업무를 담당하게 되며 계약기간은 10개월이다. 보수는 월 198만원 수준이다. 시급제는 정오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며 월급은 124만원이다. 채용 인원은 최대 100명이다. 국민은행은 추후 종합평가를 통해 최우수 인력에 대해서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경단녀 파트타이머 300명을 채용했다.
우리은행도 오는 7월 경단녀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330명을 파트타이머로 고용했다. 농협은행도 500명 규모의 경단녀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며, 기업은행·신한은행 등도 시기와 인원 등 세부사항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도 경단녀 채용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단기 계약직인 경단녀 채용을 통해 정부정책에 발맞추고,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카드 '돌려막기'처럼 매년 수백명의 여성을 채용하고, 내보내고, 다시 채용하며 일자리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직원도 내보내며 인력 축소를 진행하는 은행들로서는 정부의 압박과 대외적인 시선 때문에라도 채용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단녀 채용은 부담이 적은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4·13 총선이 열리는데다, 총선이 끝나면 바로 '19대 대통령선거' 정국으로 들어가면서 정·관·재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은행권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향후 행보를 어떻게 전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