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직업이 은행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 번이나 연임하며 14년간 한국씨티은행(구 한미은행장 포함)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보험사 코리안리에서 다섯 번 연속 CEO를 역임했던 박종원 전 사장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은행장을 오래 맡고 있다는 것은 해외 본사가 하 행장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하 행장은 국내를 대표하는 글로벌 금융인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는 본사에서 신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최근 한국씨티은행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지 않다. 직원들의 신뢰를 잃었고, 노사 갈등의 책임론도 거세다. 그동안 하 행장과 한국씨티은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분기에만 16억원 높은 연봉 '눈길'
하 행장이 본사에서 경영능력을 높이 인정받은 이유는 본사에 대한 '해바라기 경영'이 주된 이유라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한국씨티은행 노조에 따르면 지난 4월 전체 조합원을 상대로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총 투표인원의 91.6%인 2551명이 파업에 찬성했다.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투표결과에 따라 3단계로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7일부터 사측이 부당하게 요구했던 수당 없는 추가근무 등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준법투쟁 형태를 시작했고, 6월부터는 신규상품 판매를 거부할 예정이다. 또 6개월에 걸쳐서 태업을 진행한 후 본격적인 파업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발단은 지난 4월 한국씨티은행이 대규모 점포 폐쇄와 인력구조조정을 밝히면서다. 전체 영업점의 30%가량 점포를 올해 안에 폐쇄하기로 했다. 최근 통폐합 56곳 점포 명단도 확정했다.
고배당 논란 일자 해외용역비 대폭 늘리는 '꼼수' 사용?
한국씨티은행 사측은 점포 폐쇄와 구조조정이 경영악화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씨티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사측이)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영악화의 원인은 최근 들어 해외 본사에 지급하는 과도한 용역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 행장의 본사만을 위한 '해바라기 경영'이 문제를 키웠다는 얘기다.
오래전부터 한국씨티은행은 매년 본사에 고액 배당금을 안겼다. 한국씨티은행 노조에 따르면 본사에 2005년 916억원, 2006년 655억원, 2007년 917억원, 2010년 1002억원, 2011년 1299억원의 배당금을 안겼다. 2011년의 경우 당기순이익이 4568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그런데 2012년부터 한국씨티은행은 본사 배당을 줄였다. 2012년 798억원을 배당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500억원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시민단체와 금융당국이 본사에 대한 고배당을 두고 '국부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압박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씨티은행은 해외용역비를 크게 늘렸다. 한국씨티은행은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한 이후 매년 미국 본사에 경영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용역비를 지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지출된 전체 용역비는 1조2185억원으로, 이 중 해외용역비는 62%(7541억원)를 차지한다. 한국씨티은행의 당기순익이 2011년 4567억원, 2012년 2385억원, 2013년 2191억원 등으로 줄어들었지만 해외용역비는 2011년 745억원, 2012년 1370억원, 2013년 1390억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고배당 정책으로 시민단체 등의 감시가 심해지자 용역비를 늘리는 '꼼수'를 쓴 것이다. 외국계 기업의 용역비는 모그룹이 각 자회사에 경영자문료나 용역 제공에 대한 경비를 뜻한다. 외국계 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사에서 지출하는 전산서비스 이용료, 본사 광고비 등도 용역비에 포함된다. 금융감독원에 공시하는 실적보고서나 연간보고서에는 일반적으로 영업비용으로만 표기된다. 어디에 얼마가 사용됐는지 해당 회사에서 밝히지 않는다면 파악이 어렵다. 대부분 용역비를 대외비로 하고 있어 논란의 단초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국의 영업실적이 저조하자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씨티은행에서 자금을 빼간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씨티은행 사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펄쩍 뛴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씨티그룹과 같은 다국적기업에서 그룹 내의 계열사가 본점이나 지역본부로부터 용역을 제공받고 실제 제공되는 용역경비의 일부를 부담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원칙"이라며 "국내 세법에도 정당한 대가의 지급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용역비 내역서 점검 나서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민단체 등은 금융당국이 외국계 기업의 불투명한 내부거래를 투명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외 본사의 경영컨설팅 등이 필요한 경우 절적한 수준에서 책정됐는지를 금융당국이 투명하게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외국계 기업의 내부거래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은 장기적 관점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 자본주의 경제에서 배당금이나 용역비 등을 금융당국이 직접 규제에 나설 경우 외국인 투자자본의 이탈을 유발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또 한국경제의 평판을 떨어뜨려 외국계 기업 투자 유치가 힘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금융감독원은 최근 한국씨티은행의 용역비 내역에 대한 점검을 벌이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 국부유출 의혹을 강도 높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점검 이후 하 행장의 한국씨티은행 내 입지가 어떻게 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세형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