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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황창규 회장(61)의 KT가 신뢰-지속가능경영에 의구심을 낳고 있다.
KT는 최근 연이은 내부 악재로 신뢰경영에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의욕적으로 시작한 프로야구 10구단을 통한 스포츠마케팅 신사업에서도 신뢰감과 지속가능경영에 불안한 징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신임 황 회장이 취임(1월)하자마자 가입자 12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대사건'이 더해져 글로벌 정보통신기업의 이미지가 급락했다.
이들 악재는 전임 회장 체제에서 발생한 것들이라 새로운 '황창규호'에 책임을 가중시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KT 10구단의 경우는 좀 다르다.
KT는 지난해 국민적인 관심을 끌어내며 10구단 유치에 성공했다. 프로스포츠는 이제 과거처럼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일환으로 그치지 않는다.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사업역량 강화의 중요한 수단이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연간 700만 관중을 자랑하는 프로야구라면 더욱 그렇다.
KT도 10구단을 유치할 때 '빅테크테인먼트(Baseball+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tainment·야구+정보통신+첨단기술+즐거움)'를 표방하며 유·무선전화, 인터넷, 미디어-방송, 금융 등 계열사의 사업역량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프로야구에 수천억원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10구단은 몇년 운영하다가 그만 둘 일도, 회장이 바꼈다고 유치 1년 만에 주춤할 사업이 아니다. 내년 1군리그 진입을 앞두고 다음달 2군리그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박차를 가해도 모자랄 때다. 하지만 KT가 대국민 공약처럼 밝혔던 10구단 관련 약속을 살펴보면 '황창규호'의 의지에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우려가 현실로 되나?
KT는 "회장이 바꼈더라도 10구단 추진 작업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겉으로는 그렇다. 2군리그 출정식이 오는 29일 열릴 예정이고, KT 선수단의 해외 전지훈련과 야구단 조직구성도 정상적으로 끝냈다. 작년 말 열려던 2군리그 출정식이 이석채 전 회장 사건으로 한차례 연기됐고, 수원야구장 리모델링 공사 지연으로 성균관대 야구장을 빌려써야 하는 차질을 겪었지만 2군리그 참가는 무난해 보인다. 그러나 스포츠조선이 10구단 유치 1년을 맞아 '10구단 창단과 관련한 KT-수원시의 약속' 문건을 확보해 점검한 결과 석연치 않은 징후들이 발견된다. 이 문건은 KT가 10구단 유치전 과정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향후 청사진으로 제출한 것이다. KT는 이 문건에서 총 10여개 항목에 걸쳐 약속을 했다. 이 중 대부분은 창단작업과 마케팅 전략-효과, 야구발전 지원책으로 구성됐다. 창단작업을 제외한 대다수는 장기적 플랜이어서 평가는 시기상조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차질없이 이행되고 있어야 할 약속에서 우려감을 안겨준다. 지난해 10구단 유치전 당시 KT와 경합했던 부영그룹은 "KT의 회장 임기제는 사업의 안정-연속성에서 불안정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KT는 "괜한 걱정이자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했다. 부영그룹의 지적이 괜한 걱정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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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약속 문건에서 가장 전면에 내세운 것이 '구단 설립 및 창단 지원'이다. 1군 진입시까지 총 65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1군선수-코칭스태프 구성(250억원) 다음으로 큰 사업이 2군 전용구장·숙소 건립(200억원)이다. 전용 구장·숙소는 프로야구의 필수 인프라다. KT는 지난해 10월 여주시 강천면 9만3763㎡ 부지에 이를 짓기로 하고 여주시와 MOU(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현재 성균관대 시설을 2015년까지 2년 임대한 KT는 여주구장을 늦어도 2016년 초까지 완공해야 한다. 하지만 본지 확인 결과 MOU 체결 이후 아무런 후속 작업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KT는 여주시 측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여주시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여주시 관계자는 "MOU는 KT가 계획부터 완공까지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여주시는 행정지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면서 "KT가 기본적인 도시계획 등 어떤 사업을 한다는 신청서라도 제출해야 이를 토대로 검토-승인을 거치는 게 정상적인 절차"라고 말했다. KT가 여주 구장 건립을 위한 본격 행보에 착수했다면 용역 업체의 문의라도 왔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KT 측과 간단한 업무 협의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하도 연락이 없길래 KT 측에 몇 차례 전화했지만 내부사정 때문에 기다려 달라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한화는 3만6363㎡의 부지에 서산 2군 전용구장을 완공(2012년 12월)하기까지 설계 단계부터 1년 6개월 가량 걸렸다. KT의 여주 부지는 한화보다 2.6배 크다. 그런데도 MOU 체결 이후 5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여주 프로젝트'가 지연되면 2015시즌부터 1군에 합류하는 10구단의 향후 행보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전사적인 지원계획은 어디로 가나
KT는 10구단 약속에서 6만2000여 그룹 계열사와 협력사 임직원의 유·무형 지원 파워를 자랑했다. 이 가운데 50여 계열사와 함께 하는 'KT그룹 야구단 발전위원회 운영'을 핵심 약속으로 내세웠다. 전체 그룹 차원의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야구단 지원 시스템 구축을 위해 그룹내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계열사 업무 특성에 맞게 사업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BC카드, KT렌탈, KT스카이라이프, KT미디어허브 등 계열사들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야구단 지원금으로 조성해 연간 50억원 규모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현재 '야구단 발전위원회'의 존재가 애매하다. KT 측은 "KT스포츠단에 지분 참여한 계열사들이 금전적·업무적 지원을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상의 발전위원회가 사내 별도 기구를 의미하는 게 아니지만 사실상 발전위원회 역할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간 50억원 지원금에 대해 KT는 "지난해 지분 참여금과는 별도로 50억원 이상 지원받았다"고 설명하지만 정확한 지원금 규모, 사용처 등에 대해서는 내부 사정상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올해분 지원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이석채 회장 시절 창단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정성복 부회장이 창단 완료로 창단준비위가 자동 해산된 뒤 발전위원회를 이끌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황 회장이 취임하면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KT를 떠났다. 그룹 내 유일한 스포츠 경영 전문가였던 권사일 사장도 비슷한 시기에 물러난 이후 10구단은 '선장'없이 항해중이다. 주변에서는 "10구단은 이석채 체제의 큰 공적으로 여겨지는데 후임 체제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황 회장은 취임 이후 내부 개혁의 일환으로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조하고 있어 계열사의 야구단 지원금 조성이 약속대로 진행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2군리그 참가를 목전에 둔 KT스포츠단은 올해 신년 업무보고도 못하고 있다. KT가 10구단 국민 약속으로 인해 신뢰감을 또 잃는 게 아닌지 우려감만 계속 이어진다. 황 회장은 이제 10구단의 새로운 구단주가 돼야 한다.
KT 측은 "2군리그 출범이 급선무라 다른 업무에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한 형편이다. 여주 훈련장은 아직 시간이 있고, 상황에 따라 성균관대 야구장 임대 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면서 "그룹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10구단 약속을 차질없이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